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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게 기억 더듬어 성폭행 피해 밤늦도록 진술했는데…"

성범죄 혐의를 받는 중국인이 강제퇴거 조치에 따라 출국하는 바람에 사건 수사가 중단되고 처벌 기회를 놓친 일이 뒤늦게 알려졌다.

국내 거주 외국인이 200만명을 넘어선 상황에서 수사기관과 출입국사무소 간 공조체계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캄보디아 출신의 근로자 A(28·여)씨는 전 직장 관리자였던 B(29·중국인)씨로부터 성폭행과 추행을 당한 사실을 용기를 내 고발하려고 했다.

A씨의 법률 대리인을 맡은 원곡법률사무소의 최정규 변호사는 강간 및 성폭력특별법 위반 등의 혐의로 B씨를 지난 1월 10일 의정부지검에 고소했다.
성폭행(일러스트) (사진=연합뉴스)
성폭행(일러스트) (사진=연합뉴스)

이어 같은 달 26일 A씨는 안좋았던 기억을 더듬어가며 의정부 성폭력피해자통합지원센터에서 조사를 받았다.

오후 2시에 도착해 약 한시간 반 뒤 진술을 시작했고, 조사는 6시간 넘게 이어졌다. 이후 진술조서를 열람한 뒤 이날 오후 10시 반이 되어서야 일정이 끝났다.

2015년 경기도 포천 소재 회사에 입사해 그해 여름부터 이듬해 9월까지 B씨로부터 상습적으로 추행과 성폭행을 당한 기억을 꺼내 하나씩 진술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매우 힘든 일이었다. 통역도 거쳐야했기에 쉽지 않았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B씨는 이미 앞서 1월 20일 강제퇴거 조치로 본국으로 출국한 뒤였다. 가해자를 검거할 방법이 요원한 상황에서 A씨는 아무것도 모른 채 조사를 받은 것이었다.

A씨 측은 이러한 내용을 이달 초 의정부지검의 고소·고발사건 처분결과 통지서를 받고서야 알게 됐다.

의정부지검은 기소중지 처분을 내렸다고 알려왔다. 기소중지란 피의자의 소재 불명 등을 이유로 사건 수사를 중단하는 것을 말한다.

앞서 A씨를 때려 다치게 한 혐의로 기소됐던 B씨는 지난 1월 11일 의정부지법에서 열린 1심에서 징역 4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돼 강제 출국했다.

출입국관리법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석방된 사람'에게 강제퇴거 명령을 내리도록 규정한 데 따른 조치였다.

사건 접수 이후 피의자 소재 파악을 하지 않은 사이, B씨는 그 사이 원칙대로 본국으로 돌아가 버린 것이었다.

A씨는 "힘들게 기억을 더듬어 밤늦도록 진술했는데 처벌을 못 한다니 너무 화가 나고 허무하다"며 억울해했다고 한다.

최 변호사는 "수사기관과 출입국관리사무소의 공조체계를 통해 피의자가 자진출국하는 걸 막지는 못하더라도 강제퇴거는 시키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국내 거주 외국인 200만명을 돌파하고 외국인 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공조체계 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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