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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낯선 곳에서 발견하는‘익숙한 원칙’
터키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을 계획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터키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대학원 다닐 때 터키인 유학생 친구가 있어서 친하게 지냈고, 2002년 월드컵 때는 터키를 형제 나라라고 응원하면서 친근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실크로드의 종착지, 아시아와 유럽의 만남, 기독교와 이슬람의 만남 등이 이루어진 복합적인 나라라는 인식도 막연하게나마 가지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여행을 앞두고 터키사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터키에 대한 호감, 궁금증 그리고 설렘을 잔뜩 가지게 되었다.
무엇보다 터키가 자리한 지역이 다양한 문화, 민족, 종교가 만나고 융합되는 다층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터키 서북부 에게해 연안의 트로이, 중남부 내륙 지방에서 강성한 세력을 자랑했던 세계 최초의 철기문명 히타이트 제국, 이후 초기 기독교가 싹트게 되었으며 그리스ㆍ로마 문명 또한 꽃을 피웠다. 서로마가 붕괴한 이후에도 동로마, 즉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한 비잔틴 제국이 아름다운 문명국가를 이루었다. 동쪽에서 내려온 용맹한 유목민 국가 오스만 투르크는 배를 들고 산을 넘는 기상천외한 작전으로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다. 이때부터 이슬람 국가로 바뀌게 된다.
이토록 다양한 종교, 문명, 민족, 문화가 엎치락뒤치락하는 가운데 이를 관통하는 한 가지 중요한 원칙이 있음을 발견했다. 특히 이 지역을 가장 오래 지배했던 비잔틴 제국과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바로 다른 종교, 다른 문명, 그리고 다른 민족에 대한 수용성ㆍ개방성이다.
비잔틴 제국은 이교도인 투르크를 정복하러 온 십자군에 대해 온전하게 동의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 같은 태도 때문에 오히려 콘스탄티노플은 십자군전쟁의 막바지에 십자군으로부터 훼손을 당하기도 한다. 오스만 투르크 역시 정복지의 주민들에게 이슬람교를 억지로 강요하지는 않았다. 단 이슬람교를 믿는 경우 세금 감면 혜택을 주어 유도하기는 했다.
터키공화국을 건국한 케말 초대 대통령은 이 같은 역사적 유산을 이어받은 덕분인지 다양한 문화에 대한 수용성ㆍ개방성을 확실하게 정착시키려고 노력했다. 터키의 아버지라 불리는 케말 대통령은 ‘탈이슬람’ ‘서구화’ ‘다민족 공존’ 등을 내세우며 급진적 개혁정책을 펼쳤다. 터키가 다른 이슬람 국가와 많이 차별화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민 대다수가 이슬람교를 믿고 있음에도 터키는 이슬람교를 국교로 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학교 등 공공장소에서 히잡 착용 등 종교적 색채가 강한 옷차림을 금지하고 있다. 실질적 이슬람 국가이지만 다른 종교에 대해 배타적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런 덕분에 터키는 여러 가지 혜택을 누린다. 이슬람 국가 중에서 평화와 자유를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에서 누리고 있다. 또 유럽 지역 국가에 비해 싼 인건비와 정부의 개방정책 때문에 유럽의 생산기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외국인 투자 유치를 활발하게 하고 있다. 유럽연합(EU) 가입 등 유럽 경제권에 편입되려는 노력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뿐만 아니다. 세계 각국으로부터 연간 3000만명에 가까운 관광객이 몰려와서 문명의 교차로이며 용광로인 터키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만들고 있다.
아시아의 끝에 있으며 유럽의 입구에 자리한 나라.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 수도 이스탄불이 형성되어 있는 나라. 낯선 이 나라에서 익숙한 원칙을 발견한다. 수용성과 개방성이 배타성과 획일성을 이긴다는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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