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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살 엄마가 낳은 이 아이에겐 이름이 두 개입니다 [유령아이 리포트]
〈3부〉 아이들이 있어야 할 곳 ③ 군포 위탁가정 영민이네 이야기
‘아동이 태어난 가정에서 성장할 수 없을 때에는
가정과 유사한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조치한다.’
아동복지법 4조 3항

작년 5월의 어느 수요일 저녁. 태어난 지 겨우 일주일이 된 사내아이가 군포 새가나안교회의 베이비박스에 들어왔다. 생모는 직접 지어준 이름과 생년월일만 적은 쪽지 한 장을 남겼다. 마침 교회를 찾았던 교인이 아이를 두고 돌아서는 생모와 마주쳤다. 18살이고, 키가 컸다. 황망하게 자리를 떠나려던 생모로부터 교인이 그나마 건진 정보였다.

그때 베이비박스에 들어왔던 영민이(가명)는 지금 이현정(38) 씨 부부의 둘째 자녀로 지내고 있다. 초등학교 2학년인 첫째 영진이(가명)는 새로 생긴 동생을 끔찍하게 아낀다. ‘영민’은 부부가 지어준 이름이다. 가족관계등록부엔 생모가 쪽지에 남긴 이름으로 기록됐다.

태어난 지 일주일만에 베이비박스에 맡겨졌던 영민이(가명)와 위탁모인 이현정 씨. [사진=박로명 기자]

현정 씨는 가정위탁으로 아이를 맡았다. 2년 전 둘째를 어렵게 임신했지만 유산됐다. 워킹맘으로 가족 안팎을 챙기며 바쁘게 살던 이 씨에겐 큰 상처였다. 숨고르기가 필요했다. 그간은 바쁜 딸을 대신해 친정 어머니가 손자(영진이)를 챙겼다. 휴직을 하고 아들과 지내는 시간이 늘다보니 아이에게 ‘엄마의 자리’라는 게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새가나안교회 신자인 현정 씨가 교회 베이비박스에 영민이가 들어왔단 이야기를 들은 건 그때 즈음이다.

위탁을 해보자는 이야길 남편에게 꺼냈다. “말도 안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현정 씨는 뜻을 접진 않았다. 틈날 때마다 입양 커뮤니티에 접속해 베이비박스 아동들이 어떻게 입양되고 위탁가정으로 가는지 살폈다. 교회에서 보내준 영민이 사진도 닳도록 들여다 봤다. 큰아들 영진이가 “엄마, 애기를 데리고 오지 왜 자꾸 그러고 있어”라고 할 정도였다. 결국 남편도 “아이를 자식으로 키워보자”고 동의했다.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아이들은 출생신고가 안 된 ‘유령아이’들이다. 가족관계등록법은 시·읍·면의 장이 이런 아이들의 성본창설 절차를 진행하라고 규정한다. 작년 6월 군포시장이 법원에 영민이의 성본창설 허가청구를 냈다. 때문에 영민이의 본관은 군포로 돼 있다.

서울 관악구에 있는 베이비박스(왼쪽)와 경기도 군포에 있는 베이비박스. 영민이는 군포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아이다. [사진=박준규 기자]

현정 씨 부부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운영하는 경기남부가정위탁지원센터에서 위탁교육을 받고 위탁엄마, 아빠가 될 준비를 했다. 일시보호소에서 지내던 영민이는 작년 8월 11일에 집으로 왔다. 현정 씨는 이날 주민센터에 전입신고 하면서 비로소 아이의 주민등록번호가 생성됐다.

“처음 영민이를 만났을 때 아직도 기억나는 장면이 눈을 너무 똥그랗게 뜨고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하는 표정을 짓는 거예요. 자기 인생이 바뀌는구나 싶었던 거 같아요. 3개월짜리 아이더라도 자기한테 일어나는 변화를 아는 것 같았어요.”

현정 씨는 지난 3월부터 아동권리보장원 도움을 받아 영민이의 ‘미성년후견인’ 선임 절차를 밟고 있다. 수십가지 서류를 준비하고 법원 조사관과의 면담과 가정조사를 거쳐야 한다. 그러면 주민등록상 이름도 영민으로 바꿔줄 생각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엔 입양까지 계획하고 있다.

“사춘기가 오면 친구 중에서 누군가는 (영민이에게) 뭐라고 할 것 같아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려고요. 대수롭지 않게 ‘그게 어때서’라고 생각하게끔 단단하게 키우고 싶어요. 상처는 있으나 흉터가 지지 않고 아물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저희의 역할 같아요.”

돌고돌아 시설로 밀려나는 아이들

영민이는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보호대상아동’에 해당한다. 보호자가 없거나 보호자로부터 이탈된 아동, 보호자가 학대(방임 포함)하는 경우 등 생부모 가정으로부터 제대로 자라기 어려운 아동을 뜻한다.

이런 아이들에겐 몇 가지 가능성이 있다. 보건복지부가 작성한 ‘아동보호서비스 업무 매뉴얼’에 따르면 ▷원가정 보호(복귀) ▷입양 ▷연고자 대리양육 ▷가정위탁(대리양육위탁·친인척위탁·일반위탁·입양 전 위탁) ▷아동복지시설(보육원·일시보호시설) 등이다. 국내법과 유엔아동권리협약 등에선 아동을 원가정에서 양육하는 걸 최우선으로 권고한다. 그게 어렵다면 입양, 가정위탁 같은 ‘가정과 비슷한 환경’이 우선된다.

특히 정부는 가정위탁을 확대를 정책적 우선순위로 올려놨다. 하지만 좀처럼 확대되지 못하고 있다. 2016년 보호대상아동 가운데 가정위탁(입양 전 위탁 포함)으로 보호된 아동은 27.7%(1417명)이었고, 이 비중은 이듬해 29.2%로 늘었지만 이후 28.5%(2018년)→26.0%(2019년)로 줄어들었다.

[그래픽=권해원 디자이너]

특히 혈연관계가 없는 부모가 아이를 맡아 키우는 일반가정위탁은 활성화가 더 어렵다. 일반위탁 가정은 2015년 이후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다. 혈육에 기반한 정상가정 프레임이 강력히 작동하는 한국 사회는 보호대상아동들이 가정 환경에서 자라긴 까다로운 조건이다.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유령아이’들이 초반에 위탁부모를 만나지 못하면 결국 ‘시설’(보육원)로 갈 수밖에 없다.

위탁모인 이현정 씨는 “영민이는 베이비박스에 들어오고 한 달이 지나도록 위탁가정이 안 구해졌다. 이후에도 구하기 어려울 상황이었다”며 “가정으로 못 가고 보육원에서 클까봐 하는 조바심이 났다”고 말했다.

강미정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장은 “정서적 지지를 받고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가정이 좋은 양육환경일 수밖에 없다”며 “규칙에 맞춰서 사는 시설에서는 아이들의 자율성이 제한되고 정서적 상호작용이 힘들다”고 설명했다.

nyang@heraldcorp.com

dodo@heraldcorp.com

헤럴드 디지털콘텐츠국 기획취재팀

기획·취재=박준규·박로명 기자

일러스트·그래픽=권해원 디자이너

궁금했습니다. 왜 출생 사실이 기록되지 않은 아이들이 끊임없이 등장할까. 출생신고는 하나의 행정적 절차이지만, 동시에 세상에 난 존재가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누릴 아동의 권리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 최소의 권리에서 비껴난 아이들은 존재합니다. 우린 그들을 ‘유령아이’, ‘투명아동’, ‘그림자 아이들’ 이라고 부릅니다.
헤럴드경제는 전국 곳곳에서 발견된 출생 미등록 아동의 사례를 수집했습니다. 온통 ‘어른들의 이유’들로 아이의 출생신고는 미뤄지거나 무시된 걸 확인했습니다. 취재팀은 개별 사례의 특수성에 매몰되기보다는, 보편적인 배경과 제도적 모순을 발견하려 애썼습니다. 그간의 취재 결과를 바탕으로 4부에 걸쳐 ‘아이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 기획보도는 ‘누락 없는 출생등록, 모든 아동의 출생등록’을 목표로 활동하는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UBR Network)와 함께 조사하고,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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