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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대면면접과 개인정보 요구, 보이스피싱 알바입니다” [인간 대포통장]
인간 대포통장 〈2부 - 범죄자 낙인 〉 ②
홍순민 서울광진경찰서 강력팀장 인터뷰
홍순민 서울광진서 강력팀장. 최재원 사진작가

보이스피싱 범죄에서 ‘현금수거책’이란 역할이 생긴 건 2017년 무렵이다. 이들은 미리 속여둔 피해자를 직접 만나서 돈을 받는다. 그리고 무통장 송금을 한다. 이른바 ‘대면 편취’ 유형이다.

한 형사의 눈에 이들은 사기범죄에 가담한 범죄자에 지나지 않았다. 적어도 처음엔 그랬다. 잡히면 구속해 실형을 살게 하는 게 마땅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아무리 잡아도 끝이 없었다. 2018년, 2019년이 지나도 줄기는커녕 오히려 더 급증했다. 피의자들은 하나같이 같은 말을 했다.

“저도 구인공고를 보고 일을 시작했다가 속았어요.”

피의자들의 진술과 정황이 대개 비슷했다. ‘구인공고를 보고 아르바이트를 구했을 뿐인데 그게 보이스피싱인지 꿈에도 몰랐다’는 주장. 어쩌면 현금수거책들도 ‘취업 사기’에 속은 이들은 아닐까, 하는 회의가 들었다. 수사할수록 이런 심증이 굳어졌고 직접 연구에 매달려 논문까지 발표하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다.

홍순민(40) 서울광진경찰서 강력팀장(경감)의 이야기다. 10년 가까이 보이스피싱을 수사해온 그는 현역 형사 가운데 처음으로 현금수거책에 관한 연구논문을 썼다. 지난달 서울 광진서에서 홍 팀장을 만났다.

“‘보이스피싱 일 할 사람 구합니다’ 하면 누가 지원을 하겠어요. 그러니 정상적인 회사인 것처럼 꾸며 구인 공고를 올려요. ‘현금 수금업무’ ‘은행 외근 알바’ 같은 문구로 올라와요. 저도 형사가 아니었다면 속을 수 있겠다 싶었죠. 검찰이나 법원에선 ‘미리 보이스피싱인 걸 의심했어야 한다’고 하는데 일반인들이 보이스피싱 조직의 구조를 알 리가 없잖아요.”

권해원 디자이너

홍 팀장은 현금수거책을 보이스피싱 말단 조직원으로 쉽게 간주하는 시각에 의문을 품었다. 그는 “직접 수사한 현금수거책들은 학생·주부 등 평범한 사람이었다”며 “하나같이 재정적 여유가 없는 구직자들로, 교묘한 취업 사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어 “‘이 사람들은 조직원이 아니다’라고 백날 주장하기보다 정식으로 연구해 논문을 쓰는 편이 빠르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원 범죄학 석사과정을 거치며 지난해 두 차례 논문을 발표했다. 지난해 3월 교신저자로 참여한 ‘보이스피싱 범죄 전달책 특성에 관한 연구’에선 현금수거책의 인구사회학적 배경을 분석했다. 그가 경찰 내부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현금수거책의 73.5%가 청년(19~39세)이었으며 85.7%가 무직자였다. 이들은 소셜네트워크(67.3%), 구직 사이트(20.9%) 등을 통해 일을 구했다가 범행에 연루됐다.

이이서 ‘보이스피싱 범죄 전달책의 특성에 관한 질적 연구’라는 논문을 썼다. 여기선 현금수거책의 피해자적 특성에 주목했다. 경찰에 붙잡힌 뒤 재판에서 사법처리를 받은 6명의 사례자를 심층 인터뷰 했다. 홍 팀장은 “해외 ‘근거이론’을 바탕으로 질문지를 구성해 수사자료와 교차 검증한 결과, 이들은 사기 가해자 특성은 없고 피해자의 특성이 발견됐다”고 했다.

“이 사람들이 완전히 무고하다는 것은 아니에요. 형법에 저촉되는 일을 하긴 했지만 과연 구속수사해 중범죄자 수준으로 징역형을 선고해 처벌하는 게 맞느냐는 거죠. 현금수거책은 보통 사기죄나 사기방조죄로 처벌돼요. 그럼 사기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특성이 강해야 하는데 제가 직접 연구해보니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홍순민 서울광진경찰서 강력팀장이 헤럴드경제 취재팀과 인터뷰하고 있다. 최재원 사진작가

홍 팀장은 논문에서 무고한 시민이 현금수거책으로 이용당하는 걸 막으려면 ▷공익광고 ▷구인광고 적격성 검증 ▷보이스피싱 구인광고 신고포상제 등이 필요하다고 썼다. 그저 강력한 처벌만으로는 현금수거책이 등장하는 사건을 줄일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해마다 현금수거책으로 검거돼 징역형을 사는 사람들이 수천명입니다. 정부가 보이스피싱 범죄 가담 방지에 관한 대대적인 홍보를 해야 현금수거책이 계속해서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있어요. ‘알바 잘못했다가 징역 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인식을 심어야 합니다.”

그가 논문을 냈지만 경찰조직이나 학계에서 달라진 건 없었다. 지극히 ‘소수 의견’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비주류적 입장이기에 반응이 전혀 없었다”며 “일부 수사관이나 법조인 입장에선 기분 나쁠 수 있는 논문이라는 걸 예상하고도 썼다”고 했다.

하지만 현금수거책 피의자들은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취약한 상태라면 누구나 엮일 수 있기에 홍 팀장의 주장은 귀 기울일 만하다.

“비대면 면접과 개인정보 요구, 이 두 가지를 확실히 경계하세요. 대면 면접 없이 하는 알바는 없습니다. 가족관계증명서든, 신분증이든 전화기로 찍어서 카톡으로 전달하라고 하는 알바도 없습니다. 제출하려면 직접 만나서 제대로 된 회사인지 확인부터 해야 해요. 쉽게 가족 인적 사항을 통신매체로 넘기는 건 지극히 조심해야 합니다.”

[헤럴드경제 디지털스토리텔링 : 인간 대포통장]

졸지에 사기범죄의 ‘공범’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현금다발을 받아 어딘가로 입금했습니다. 수사기관은 그들을 ‘현금수거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보이스피싱 총책과 범행을 공모했다는 죄를 묻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가짜 취업공고에 속아 ‘그 일’에 엮였습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취업준비기간을 보내던 청년, 코로나19로 일터에서 밀려난 구직자, 단지 세상경험 쌓으려 알바를 찾았던 대학생이 보이스피싱 조직의 거미줄에 걸려들었습니다.

피해자와 사회는 그들을 비난합니다. ‘어떻게 범죄인 걸 모를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 설계자들이 짜놓은 판은 지독하리만큼 교묘합니다. 피해자들을 감쪽같이 속이듯이 자기들의 수족 노릇을 할 사람도 철저히 기망합니다. 정작 보이스피싱 본체는 막대한 수익만 삼키고 법망을 피해 음지로 숨어들고 있습니다.

공범이 된 이들의 허물없음을 대변하려는 게 아닙니다. 평범한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는 한순간에 피해자-피의자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의 기록입니다. 동시에 보이스피싱 꼭두각시가 된 사람들을 비난하고 강하게 처벌하는 게 최선인지 화두를 던지고자 합니다.

[프롤로그]

[단독] 보이스피싱 ‘공범’ 몰렸다 실종된 아들,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1부]

① ‘살아있는 대포통장’ 된 그들…절반 이상이 2030

② 보이스피싱 ‘꼭두각시’로 쓰이다 버려진 사람들

③ “엄마, 그냥 교도소 갈게”…22살 아들이 보이스피싱 ‘낙인’ 찍혔다

④ 5060도 ‘보피 알바’…감쪽같은 사업자등록증에 속는다

[2부]

① 보이스피싱 ‘무죄’ 받았지만…신경안정제는 못 끊는 이유

헤럴드 디지털콘텐츠국 기획취재팀

기획·취재=박준규·박로명 기자

일러스트·그래픽=권해원 디자이너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nyang@heraldcorp.com
dod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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