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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상] 대선판 살벌한 ‘사법만능주의’…정치·언론·사법 기능 해치는 정치권[정치쫌!]
정치적 수사 된 “강력한 법적조치”…언론 자유·감시 기능 위축시켜
‘정치적 중립성’ 생명인 사법기관…스스로 정치에 끌어들이는 정치권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쓰일 투표용지 인쇄가 시작된 28일 경기 안양시 동안구 호계동 세한피엔씨에서 투표 용지를 인쇄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제20대 대통령 선거에 쓰이는 투표용지가 28일 오전 경기도 안양시의 한 인쇄소에서 인쇄되고 있다. 이번 대선에 선에 등록한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등 14명으로 각각 번호와 함께 이름이 인쇄된다. 박해묵 기자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제20대 대선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에서 “강력한 법적조치를 취하겠다”는 말이 난무하고 있다. 하루에 많게는 8건의 고발조치가 이뤄지고 있다.

상대 후보와 진영 인사에 대한 고발은 물론, 대선 후보자에 대한 의혹 기사를 작성한 언론인에게도 고발장을 내밀어 두 대선후보가 강조하는 ‘언론의 자유’와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정치가 정치와 언론을 사법의 영역으로, 사법을 정치의 영역으로 끌고 당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5일 선관위 주최 2차 TV토론을 마친 후 상대 후보의 발언에 대해 서로 고발에 나섰다. 국민의힘이 문제 삼는 발언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저축은행비리 수사를 봐줘 도움을 준 분이 윤석열 후보”라며 “녹취록이 맞는다면 본인이 죄를 많이 지어서 죽을 사람이라고 돼 있다”고 말한 부분 등이다. 이에 맞서 민주당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2014년 6월29일 밤 김만배.정진상.김용.유동규가 모여 도원결의 의형제를 맺는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허위발언이라며 고발 조치를 예고했다.

대선후보 당사자와 배우자에 대한 고발은 일일이 세기 어려울 정도다. 주로 후보와 배우자에게 제기된 의혹 자체에 대한 고발과 이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는 대변인과 공보단에 대한 고발이 이뤄진다. 과열된 공방은 해당 의혹을 제기하는 언론사와 언론인에 대해서도 예외는 없다.

국민의힘은 지난 22일 김건희 씨의 주가조작 공모 의혹과 관련한 세 군데 언론사의 보도에 대해 보도의 출처와 자료가 불법이라며 법적 조치를 언급했다. 선대본부 밝은미래위원회 관련 보도에 대해 YTN ‘뉴스가 있는 저녁’ 제작진과 촬영진에 대해서는 무더기로 고발했다. 28일에는 윤 후보의 삼부토건 봐주기 수사 의혹을 보도한 오마이뉴스에 대해 “기자가 임의로 해석해 의혹을 제기했다”며 “강력한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혈투를 벌이는 선거 과정에서 이와 같은 “법적 조치”는 ‘무적의 논리’로 통용된다. 실제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하면 고발장 접수부터 사건이 배당되고 수사주체가 정해진다. 고발인과 피고발인 조사가 이뤄진 후 공직선거법 공소시효인 선거일 뒤 6개월 후에 기소와 불기소, 기소유예 등이 결정된다. 기소가 될 경우 1심 재판부터 대법원까지 긴 시간 동안 법적 절차가 이뤄진 뒤 유무죄가 결정된다.

유무죄를 당장 결론지을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말을 지속적으로 하는 이유는 ‘해당 의혹이 사실이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정치적 언어로 사용되는 측면이 크다. 초박빙 접전의 선거판에서 당장 하루의 여론이 중요한 시점이기에 해당 의혹과 보도를 사법기관의 판단에 맡길 정도로 ‘자신감’이 있다는 것이다. 선거가 끝나 승패가 갈리면 이긴 쪽에서 대승적으로 고발을 취하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문제는 정치적 중립성이 생명인 사법기관을 정치에 끌어들이는 태도다. 한 쪽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주장했던 정치가 정작 선거철만 되면 검찰과 법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셈이다. 또 다른 쪽에서는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을 사퇴하고 곧바로 정치에 뛰어들어 대선후보가 됐다. 정치권 스스로 사법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을 위태롭게 하는 것도 모자라 언론도 정치와 사법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사법 만능주의’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러한 행위는 의혹 제기 당사자는 물론 해당 의혹을 보도하는 언론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유권자의 알권리를 제공하는 것은 언론의 사명이며,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근간이다. 정당한 취재를 통한 의혹 제기와 이에 대한 해명 과정에서 유권자의 가치판단이 이뤄진다.

그러나 언론에 대한 과도한 법적조치는 검증을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 의혹 보도가 없었다면 이 후보의 부인 김혜경 씨의 법인카드 사적유용 문제나 윤 후보의 부인 김건희 씨의 허위 이력 작성 문제도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최근에는 언론에 대한 자의적인 ‘색깔론’도 심각한 수준이다. 내 편과 남의 편을 가르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특정 의혹 기사를 주로 특정 기자가 집중적으로 보도한다고 선거에 영향을 미칠 의도가 있다며 악의적인 보도라고 쉽게 규정한다. 이러한 ‘언론 갈라치기’는 언론의 비판과 감시의 기능을 약화시키고 언론 환경을 저해할 수밖에 없다.

정치와 언론을 사법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사법기관을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악순환은 ‘역대급 네거티브 대선’에서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는 대화와 타협이 가능하고 품격있는 정치를 언제쯤 볼 수 있을까. 분명한 건 ‘사법 만능주의’가 건강한 정치와 언론, 사법의 기능을 저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상=시너지영상팀]
[영상=시너지영상팀]
silverpap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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