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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연주의 현장에서] 친환경, ESG 점수따기용 안 되려면

가끔 물건을 사고 나서 친환경 비닐봉지를 받게 되면 영 개운치 못한 기분이 든다. 생분해가 되는 PLA 재질로, 비닐로 분리수거하지 말고 일반쓰레기와 함께 버리라고 적혀 있는데 실제 친환경 효과 면에서는 물음표이기 때문이다.

생분해비닐은 땅속에 묻는 매립 방식으로 처리가 될 때 친환경 효과가 있는데 실제로 일반쓰레기는 소각되는 경우가 많아 생분해성 비닐이 무용지물이다. 정작 비용을 더 들여 생분해 비닐을 만들어도 이후 과정에서는 친환경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뜻이다. 이에 지난 1월 환경부는 PLA 소재 생분해성 비닐봉지의 친환경 인증을 중지하기도 했다.

오는 22일 ‘지구의 날’을 앞두고 유통가에서는 친환경 이벤트가 한창이다. 플라스틱 등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재활용 등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구에 더는 피해는 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일상생활에서 조금이라도 동참하고자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업체들은 친환경 활동에 대한 홍보를 매우 열심히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많은 제품은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가령 친환경 전용용기에 샴푸나 세제 등을 채워서 쓸 수 있는 ‘리필스테이션’은 홍보의 대상이지만 바로 그 옆에는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수많은 제품이 넘쳐난다. 한 번 장을 보고 나면 채소나 과일을 담은 플라스틱 용기를 정리하는 것도 일이다.

소위 친환경 제품이라고 하는 것들도 낭비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 텀블러만 해도 스테인리스 재질이면 1000번을 써야 친환경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집집이 굴러다니는 텀블러가 몇 개는 되지 않을까. 행사용품으로 숱하게 나눠주던 에코백도 마찬가지다. 잘 사용하지 않는 에코백이 넘쳐나다 보면 결국 그냥 쓰레기로 버리게 되는데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만 마땅한 활용처도 없어 뾰족한 수가 없다.

최근 새벽배송 등에서 친환경 배송을 위해 자주 이용하는 보랭가방도 마찬가지다. 업체별로 제각기 다른 보랭가방을 쓰고 있어, 가정마다 가지고 있는 보랭백만 합쳐도 양이 어마어마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다행히 개인이 가진 어떤 보랭가방이든 등록하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일부 업체도 있지만 대다수 업체는 자사의 로고가 찍힌 새 보랭가방을 제공한다. 과대 포장 문제가 빈번히 지적되는 명절선물 역시 냉장·냉동제품은 여러 번 재사용이 가능한 보랭가방으로 업그레이드해서 주는 경우가 늘었는데 이 역시 쌓이게 되면 처치 곤란이다. 개별 업체로서는 친환경일지 몰라도 소비자로서는 결국 버리기도, 쓰기도 모호한 물품들이 가득이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중요해지면서 기업들은 친환경 활동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그리고 가치소비를 향해가는 소비자는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에 속지 않을 만큼 나날이 똑똑해지고 있다.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친환경 비닐봉지처럼 결국 허울만 좋은 사업이 되지 않으려면 보다 큰 틀에서 보는 시각이 중요할 듯하다.

o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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