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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Z의 ‘아트 플렉스’ 미술시장을 넓히다
역대 최대 호황기…1조 돌파 눈앞
‘아트부산 2022’ 10만2000명 방문
‘포스트 박수근’ 김희수 작품 등
첫날 MZ작가 작품 줄줄이 팔려
이건희 컬렉션·RM 영향에 관심
투자 안전하고 수익성 기대 높아
“과열 우려…작가 발굴 이어져야”
1조원 돌파를 앞둔 미술시장이 역대 최대 호황기를 맞고 있다. 특히 국내 아트페어는 양적 팽창을 거듭, 지난해에만 무려 77개가 열렸다. 올해만 해도 5월 중순 현재까지 15개의 신생 아트페어가 컬렉터를 맞았다. 그 중심에 새로운 컬렉터 계층인 MZ세대가 있다. [아트쇼부산 제공]

이른바 ‘아트 플렉스(Flex·재력이나 명품 등을 과시하는 행위로 힙합 음악계에서 즐겨 써 유행이 된 단어)’의 시대다. 요즘 미술계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으로 ‘아트쇼핑’ 붐이 일고 있다. 쇼핑하듯 미술품을 고르는 MZ세대들은 미술시장을 확장하고, 신진 작가들을 띄우는 역할도 하고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미술시장은 9157억원 규모로 성장, 올해에는 1조 원 돌파가 예상되고 있다. 이 가운데 아트페어 매출은 1543억원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802억원보다 두 배 가량 늘었다.

아트페어는 여러모로 양적 팽창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열린 아트페어 수는 총 77개로, 전년(35개)의 두 배로 뛰었다. 그 중 신규 아트페어는 32개로 전체의 42%를 차지하고 있다. 올해만 해도 5월 중순 현재까지 15개의 신생 아트페어가 컬렉터를 맞았다.

아트페어 홍수 이면엔 젊은 컬렉터의 등장이 있다. 미술계에선 “미술시장에 대한 관심이 MZ세대로 확장됐고, 이들의 막강한 정보력이 기성 작가 뿐만 아니라 또래의 젊은 작가에게도 관심이 이어져 시장이 넓어지고 있다”고 본다.

최근 폐막한 ‘아트부산 2022’에서도 이러한 분위기가 입증됐다. 4일간 10만2000명이 방문, 746억원 대의 역대 최고 성과를 냈다.

현장에서 발견된 흥미로운 점은 ‘MZ세대 작가’들의 도약이다. 새로운 작가는 새로운 세대의 컬렉터들이 먼저 알아봤다. MZ세대가 MZ 작가를 띄운 셈이다. VVIP 관람을 먼저 시작한 ‘아트부산 2022’ 오픈 첫날엔 MZ 세대 작가들의 작품이 줄줄이 팔려나갔다. ‘포스트 박수근’으로 불리는 1984년생 김희수 작가의 작품들은 불과 3시간 만에 121점이 모두 팔렸다. 한 작품당 50만원인 드로잉 100점, 호당 30만원에서 시작하는 캔버스 21점으로, 갤러리 애프터눈은 총 2억원이 넘는 실적을 달성했다. 김아미 갤러리 애프터눈 대표는 “오픈과 함께 VVIP들이 2시간 30분 동안 줄을 섰다”며 “3040 컬렉터들이 많이 방문해 모두 사갔다”고 말했다.

국제갤러리에서 선보인 1988년생 작가 이희준도 인기였다. 이 작가의 크고 작은 회화들은 5분 만에 팔려나갔다. MZ 컬렉터들이 주목하는 갤러리스탠은 첫날 전시한 작품의 90% 이상을 판매했다. 서른 살의 김둥지 작가를 비롯해 아신, 백향목, 제임스 진 등 다수 작가의 작품이 완판됐다. 가수 장기하와 소설가 김영하의 책 표지를 디자인한 엄유정 역시 MZ세대가 점 찍은 작가로 구매 의사를 전하는 컬렉터들이 상당했다.

MZ세대의 ‘아트쇼핑 붐’은 미술시장의 문턱이 눈에 띄게 낮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손영희 아트쇼부산 이사장은 “지난해부터 미술시장이 호황을 이루며 젊은 애호가 층이 만들어졌다”며 “특정 계층이 아닌 일반 대중, MZ세대로 미술 전반에 대한 관심이 확대된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러한 흐름의 요인은 다각도로 분석됐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후 보상소비와 젊은 세대들의 새로운 투자처 발굴, 이건희 컬렉션과 방탄소년단 RM 등 인기 스타들을 통한 미술에 대한 관심 증가가 현재의 호황을 이끌었다고 보고 있다. 미술계의 디지털 전환 등 시대 흐름도 미술시장 열기의 배경이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아트페어를 포함해 미술시장이 전 세계적으로 호황인 것은 코로나19 이후 부동산 규제와 주식 시장 침체 등으로 자산 시장의 쏠림 현상이 생기며 새로운 투자처로 미술이 주목받았기 때문”이라며 “더불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조각투자와 NFT 등의 새로운 시도들이 소장에 적극적인 미술품과도 잘 맞아 MZ세대를 이끌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른 투자에 비해 미술품 투자가 안전하다는 인식도 크다. 국내 한 경매사 관계자는 “젊은 세대에게 부동산은 부담스럽고 주식이나 코인은 위험부담이 크며, 예적금은 이자율이 낮다고 인식되는 반면 미술품은 안전하면서도 수익성에 대한 기대가 높다”고 말했다. 게다가 미술품은 취득세와 등록세, 보유세가 없고 국내 생존 작가이거나 6000만원 미만 작품, 조각의 경우 양도세 면제 혜택을 받는다는 점에서 젊은 세대에겐 매력적인 투자처다.

지난해 ‘국민의 품’으로 나온 ‘이건희 컬렉션’과 미술 애호가인 방탄소년단(BTS) RM과 같은 세계적인 스타의 등장도 미술품 수집과 구매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확산했고, 미술 대중화에도 기여했다. RM의 취향과 안목은 수많은 MZ 컬렉터를 이끌고 있다. 이른바 ‘RM 투어’로 불릴 만큼 방탄소년단 RM의 소장품과 방문 전시는 국내 미술계에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번 아트부산에서도 증명됐다. 아트부산 관계자는 “김희수, 김둥지 작가는 방탄소년단 ‘RM픽’으로도 알려져 인기가 많은다”고 말했다.

젊은 컬렉터들의 투자 성향은 과감하고 창의적이다. 고민 없이 점 찍어둔 작가의 작품을 쓸어가거나,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고 있다. 한 갤러리 관계자는 “MZ 컬렉터들은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는 신진작가를 찾아다니거나 이미 찍어둔 작가의 작품을 고민없이 싹쓸이 한다. 큰 손 MZ 컬렉터의 경우 기존의 유명 작가들의 작품에 과감하게 투자한다”고 말했다.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미술계에서도 “2007년 미술시장이 호황을 맞았다 다시 위기가 찾아온 경험이 있어 현재의 과열된 분위기가 염려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양정무 교수는 “미술시장의 열기가 미술 작품에 대한 인기나 대중화와는 다른 지점이 있다”며 “지금의 열기와 흐름이 작가와 국가 차원 창의력 발굴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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