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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때의 난, 왜 그토록 슬펐을까?” 바리톤 이응광의 독백 [문화 플러스]
녹음 3년만에…첫 정규음반 발매
바그너·말러 ‘이뤄지지 않는 사랑’에
성악가로서 느껴온 묵직한 고민 담아
21일 롯데콘서트홀 ‘연애론’ 무대
대중과 소통 고민하다 음악극 실험
메조소프라노 伊 베레키아와 협연
20여년간 국내외 유수 무대에 선 바리톤 이응광이 말러와 바그너를 담은 첫 정규앨범을 냈다. 이뤄지지 않는 사랑 이야기를 풀어낸 두 작곡가의 음악은 성악가로 한 길을 걸어온 그의 꿈에 대한 고민을 담아 깊고 묵직해졌다. 박해묵 기자

“모든 것이 다시 좋아질 거야(Alles wieder gut).” 깊고 낮은 목소리는 주문이 됐다. 입안을 맴도는 문장에 간절한 염원이 깊숙이 새겨져 위안으로 돌아온다.

“작은 희망을 꽃피우는 가사예요. 지금은 너무도 힘이 들지만, 결국 좋아질 거라는 희망, 그러면서도 그 희망조차 소망이었음을 알고 있는 말이죠.”

길 수도, 짧을 수도 있는 20분. 그 안에 방황하는 ‘어떤 젊음’의 드라마가 그려졌다. 뜨거운 사랑의 실연, 실연의 고통, 사랑을 향한 그리움과 극복을 위한 몸부림… 이응광이 들려주는 말러의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다. 20여년간 성악가로, 세계 유수 무대의 오페라 가수로 섰고, 이미 여러 장의 음반을 가지고 있지만, 정규앨범을 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첫 정규 앨범엔 말러와 바그너를 담았다. 최근 서울 서초동의 연습실에서 만난 이응광(41)은 “클래식 첫 정규앨범으로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곡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음반을 녹음한 것은 2019년이었다. 그해 2월 베를린에서 공연을 마치고 “아름답고 추운 우데카홀”에서 장장 5일 동안 새 음반 ‘바그너 앤드 말러(Wagner & Mahler)’를 녹음했다.

“1년 정도 믹싱과 마스터링을 하며 음반 발매 준비를 했는데, 2020년에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미뤄지게 됐어요. 코로나19로 우울하고 어려운 시기에 다소 무거운 음악을 들려드리는 것이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3년을 묵힌 음반은 이응광의 휴대폰 안에서 ‘그만 아는 음악’이 됐다. “나 혼자만의 음원으로 남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도 커졌다. ‘감염병의 시대’가 서서히 막을 내리며 이응광의 음반도 ‘지각 발매’를 하게 됐다.

“3년 전의 젊은 음악을 다시 들으니, 해석이 많이 다르다는게 느껴지더라고요. 그 때의 난 왜 이토록 슬펐을까, 그 때는 조금 더 뜨거웠나보다 싶더라고요. 그 시절의 저와 저를 둘러싼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된 시간이었어요.”

음악은 사랑과 실연을 말하지만 이응광에게 가사 한 줄, 한 줄은 ‘사랑 그 이상’을 향한다. 한 마디 한 마디를 뱉는 음악 안에 그가 걸어온 길이 담겼다. 그는 “이 곡들을 사랑으로만 해석한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꿈을 담았다”며 성악가로 지나온 긴 시간을 떠올렸다.

“제가 사랑한 무대, 사랑한 극장이 있었어요. 정말 어렵게 얻은 오디션의 기회들, 너무나 서고 싶었지만 긴장과 떨림을 이겨내지 못한 나의 부족함으로 그토록 사랑하고 꿈꿨던 무대에 서지 못했을 때의 공허와 상실감이 떠올랐어요. 음반을 녹음하면서도 내가 진짜 사랑한 것은 나의 소리와 음악이라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되더라고요.”

이응광에게 이번 앨범은 이런 이유로 특별하다. 그는 “아티스트로 걸어가는 길 위에서 오래 품은 고민을 담아낸 이 음반이 바로 이 시기의 내게 딱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응광은 클래식 음악이 잘 들리지 않는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경북 김천에서 나고 자라 학창시절엔 록밴드와 중창단 활동도 했다. “60~70세가 돼도 노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접어든 길이었다. 모든 날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좋았으면 좋겠지만, 인생과 아티스트로 걸어가는 삶은 알 수가 없더라고요.”

음악과의 사랑이 깊어질수록,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지향점과 가치도 더 높은 곳을 향해갔다. 음악으로 위로하고, 희망을 전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매만지는 것이었다. 손 안으로 들어오는 성취, 안정된 삶이 아닌 “보이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으니 도리어 마음 한 켠엔 불안과 초조가 쌓였다”. 이응광은 “프리랜서 아티스트는 음악에 가치를 높이 두지 않으면 계속 해서 나아가기 힘든 직업”이라고 했다.

늘 선택 받아야 한다는 불안을 이겨야 하고, 끊임없는 자기관리와 노력이 따라야 무대에 설 수 있다.

“꾸준히 가꿔야 하고 절제해야 해요. 삶에 찌들거나, 세속적인 것을 좇으면 그것 역시 음악에 묻어나니까요. 제 음악에 순수함이 아닌 추악한 것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면 굉장히 두려워요. 그때는 노래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음악가로의 길을 가기 위해 그는 단정한 삶을 산다.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되새기려는 노력이다. 와인 한두 잔 외엔 취할 만큼 술을 마셔본 적도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음악가로의 행보는 일탈에 관대하다. 팬데믹 기간 동안 클래식 ‘엄숙주의’를 넘어 ‘부캐’ 응형의 이야기를 담은 유튜브 콘텐츠나 랜선 공연으로 팬들 곁에 다가섰다. 클래식의 저변 확대를 위해 새로운 공연 형식을 시도,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이응광이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음악극 시리즈가 그것이다.

“노래를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나의 소리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인데, 외국어 가사로 노래할 때 국내 관객들과의 소통이 약간은 불편하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제가 느낀 선율과 텍스트의 감동을 온전히 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음악극을 하게 됐어요. 클래식의 대중화는 너무나 힘들지만, 클래식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대중과 소통하는 것이 저의 사명이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음악의 메시지를 온전히 전하고, 대중과의 접점을 만들기 위한 시도는 직접 대본을 쓰고, 음악을 재해석하는 ‘실험극’으로까지 확장됐다. 그는 “다른 사람은 시도하지 않은 나만 할 수 있는 창조적인 작업으로 나아갔다”고 말했다.

세 번째 음악극인 메조 소프라노 라우라 베레키아와 함께 하는 ‘연애론(De l’Amour)‘(5월 21일, 롯데콘서트홀)도 조금 더 색다른 무대로 꾸민다. 스탕달의 ’연애론을 차용, 앨범에 수록된 말러와 바그너의 곡을 음악극으로 풀었다. 30대 후반에 녹음하고, 40대에 다시 부르는 이응광의 달라진 음악도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성악가들은 저마다 가진 역량이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가진 소리의 한계가 있는 거죠. 그걸 갈고 닦아 얼마나 아름답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으면 금방 때가 묻고, 잘 굴러가지 않아요. 저 역시 제가 얼마나 더 반짝일 수 있을지, 어떻게 더 발전할 수 있을지 고민해요. 3년 전의 말러와 바그너가 나이 든 젊은이의 방황을 담았다면, 3년이 지난 지금은 제가 겪고 있는 상황과 고민들이 음악 속에 묻어나올 거예요. 그 과정을 통해 사람들의 감정을 매만지고, 위로하고 싶습니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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