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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된 경양식집 같은 곳…약점을 장점으로·없으면 안되는 곳으로”
 세종문화회관 원승락 디자이너
 
 새 CI 제작 위해 구성원 인터뷰
 “극장에서 일하는 사람”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출발점
 
 정체성ㆍ역사ㆍ유산 담아
 한글로고ㆍ심볼마크 제작
 천지인ㆍ오선지ㆍ파사드 결합
 
 동화책ㆍ워크웨어ㆍ굿즈로 확장
 공공기관 CI의 진화와 실험 담은 역작
세종문화회관 [세종문화회관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사람들이 오고 갑니다. 오늘도 극장은 사람들의 발소리와 말소리로 가득 찹니다. (중략) 이곳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보는 순간은, 제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입니다. 나는 극장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세종문화회관 브랜드북 ‘극장’ 중에서)

‘광화문의 상징’이자, 40년 넘게 대한민국 대표 극장으로 자리해온 세종문화회관. 이 곳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대극장을 포함해 4개의 무대에 올라오는 공연을 보기 위한 남녀노소 관객들, 9개의 산하 예술단체에 소속된 단원들, 세종문화회관의 안팎을 책임지는 무수히 많은 조직원들까지….

“아이덴티티라는 것은 조직이 담고 있는 정신이면서 지향점이잖아요. 그것을 구현하는 새로운 CI(Corporation Identity)를 만들기 위해 세종문화회관은 무슨 정신을 담아야 하나 고민했어요.”

최근 만난 원승락 세종문화회관 디자이너는 “2019년 브랜드 리뉴얼을 계획하며 가장 먼저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1905년 제정 러시아 지배 당시 우크라이나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유대인 가족을 다룬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반복된 역사를 보여주며 최근 주목받는 작품이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임기가 정해진 기관장, 수시로 달라지는 구성원의 역할, 그러면서도 문화예술계 한복판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전달하는 곳. 세종문화회관이 가진 여러 속성은 이들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공공기관이면서 극장인 이곳에서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보기 위해서였어요. 100인 100색이잖아요. 저마다의 소망도, 이곳을 바라보는 관점도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공연 기획, 재무, 보완, 미화 등등 다양한 직원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열망이 무엇일까를 찾아가는 것에서 새 CI는 출발한 거예요.”

CI가 ‘기업의 정신’을 담는다고 하지만, 그것이 ‘모두의 의견’인 경우는 많지 않다. 특히나 공공기관은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 난관이 많아 의도치 않은 결과물을 만들 때가 있다. 예산 부족, 안팎의 여러 목소리, 보편적 결과물의 필요 등으로 ‘안전한 선택’을 하는 일이 많다. 상징적인 CI가 만들어져도 비판이 끊이지 않고, 직원들조차 나와 무관하다는 인식이 크다.

세종문화회관의 새로운 CI를 활용한 워크웨어 [세종문화회관 제공]

원 디자이너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고, 자신들이 들러리가 아닌 적극적인 참여자라고 이해하고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세종문화회관의 특성상 피요했다”고 말했다.

이들이 바라보는 ‘세종문화회관’은 단순히 공공기관이나 공연장의 기능을 넘어 ‘극장’이라는 본질에 닿아있었다. “내가 극장에서 일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재미 이상의 무언가를 주고 있다”는 자부심이 세종문화회관을 이끄는 사람들의 가슴 한켠에 깊이 자리했다.

최근 새롭게 선보인 세종문화회관의 CI는 2019년부터 리뉴얼에 돌입, 무려 3년에 걸쳐 개발됐다. ‘예술단 중심의 제작극장’으로의 변화를 천명한 세종문화회관의 혁신과 새로운 정체성이 담긴 결과물로, 18년 만에 탄생한 새 CI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극장’이라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세종문화회관의 CI 리뉴얼 작업은 시작됐다. ‘핫’한 디자이너들이 대거 참여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에는 신신, ‘세종 기본체’를 만드는 타입 디자인엔 양장점이 함께 했다. 최근 디자인 업계를 이끌고 있는 젊은 디자이너이자 공공기관과의 작업은 한 적이 없었던 디자이너들이 함께 했다는 점부터가 ‘특이점’이다.

CI의 방향성은 세종문화회관의 오랜 역사와 상징성을 바탕으로 세워졌다. 1978년 광화문 한가운데로 들어선 문화예술기관, “한글과 관련한 소재를 가진 대표 기관”이라는 특징이다.

“‘그래픽 디자인’ 신에서 한글이라는 소재는 함부로 할 수 없는 도그마예요. 그럼에도 세종문화회관의 아이덴티티를 이야기하며 한글을 벗어나서 뭔가를 할 수 없었어요. 세종이라는 말을 쓰면서 한글이라는 강력한 소재를, 한글이 가진 강력한 방식으로 보여줘야 우리가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최근 새롭게 선보인 세종문화회관의 CI는 2019년부터 리뉴얼에 돌입, 무려 3년에 걸쳐 개발됐다. ‘예술단 중심의 제작극장’으로의 변화를 천명한 세종문화회관의 혁신과 새로운 정체성이 담긴 결과물로, 18년 만에 탄생한 새 CI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이미 많은 국공립문화예술기관과 단체가 한글 CI를 사용했던 만큼 세종문화회관의 고심은 깊었다. 과제는 두 가지였다. ‘기존의 유행’을 피할 것, 심볼과 가독성 좋은 한글 서체를 조합하는 ‘공공기관의 대표 유형’을 피할 것. “‘원 오브 뎀(One ot them)’으로 남지 않으려는” 분투였다. 이를 바탕으로 국문로고가 태어났다. 로고는 훈민정음의 제작 원리인 천지인과 공연예술을 상징하는 악보의 오선지, 세종문화회관의 특징을 보여주는 파사드를 담아 문화예술기관으로의 정체성을 표현했다. 반영된 주요 색상들도 천(하늘색), 지(갈색), 인(노란색)을 상징한다. 눈에 띄는 점은 기존의 한글 서체와 달리 가로획과 세로획의 굵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가독성와 균형 문제가 제기되기도 하나, 도리어 신선한 조형미와 독창성이 살아났다. 심볼마크는 세종문화회관 첫 음절 ‘세’의 초성 ‘ㅅ’이자 세종문화회관 파사드의 특징인 1개의 보와 6개의 기둥을 형상화했다. 6개의 기둥은 장막이 걷힌 무대를 암시하는 프레임으로 확장된다.

최근 새롭게 선보인 세종문화회관의 CI는 2019년부터 리뉴얼에 돌입, 무려 3년에 걸쳐 개발됐다. ‘예술단 중심의 제작극장’으로의 변화를 천명한 세종문화회관의 혁신과 새로운 정체성이 담긴 결과물로, 18년 만에 탄생한 새 CI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기발한 아이디어도 반영됐다. 오선지 위에 적힌 ‘세종문화회관’은 초기 한글의 ‘곁점’을 활용한 서체로 음을 연주한다. ‘도-레-시-(화음)라라-도-(화음)라라-레-레’다. 조금은 슬픈 단조풍의 음악이 나온다. “이 음악을 통한 뮤지션과의 협업”도 고려 중이다.

원 디자이너는 “너무 트렌디하거나 유행하는 심볼이나 맥락을 투입하면 당장은 유효할지 몰라도 금방 사그라든다”며 “공공기관은 민간기업과 달리 지속적인 관리가 어렵기에 10년, 20년이 지나서도 촌스러워 보이지 않도록 최대한 베이직하고 구조적인 CI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새로운 CI엔 세종문화회관의 역사와 유산은 물론 달라지겠다는 다짐과 변화의 움직임이 담겼다. 이 CI는 무한 확장 중이다. 기존의 기업, 공공기관에선 볼 수 없었던 시도가 나온다. CI 제작을 위해 진행한 구성원의 인터뷰는 ‘극장’이라는 동화책으로 태어나 새로운 콘텐츠가 됐다. 희곡 작가 황정은, 일러스트레이터 이나영(에토프)가 참여했다. 화려한 무대를 빛내주는 무대 엔지니어의 ‘워크웨어’도 제작됐다. MZ세대에게 소구할 수 있는 트렌드 경향을 반영한 새로운 차원의 굿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존재하는 이들 업무의 속성을 담아 검은색의 점프슈트로 제작됐다. 할로미늄(이유미)이 함께 했다.

세종문화회관의 새로운 CI를 활용한 각종 굿즈 [세종문화회관 제공]

“CI를 활용한 굿즈가 단지 기념품에 머물지 않기를 원했어요. 워크웨어를 통해 예술에 관련한 엔지니어라는 특정 직업군을 떠올리며, 직업 자체에 대한 흥미도 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요즘 젊은 세대에게 워크웨어에 대한 니즈와 일종의 마니악한 소구가 있더라고요. 패션의 매체이자 수단으로서 브랜드가 알려지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 거죠.”

세종문화회관의 새로운 CI엔 공공기관 CI의 진화와 대범함을 보여준다. “한국에 대한 맥락을 이해하는 한국 디자이너만이 만들 수 있는 CI”라는 평가가 벌써 나온다.

“지금의 세종문화회관은, 오래된 경양식집이 떠올라요. 멋지게 차려졌지만, 과거의 것이죠. 극단적인 올드한 지점이 가장 왼쪽에 있는 젊은 작가들과 합쳐져 흥미로운 지점이 될 거라 봤어요. ‘세종’이라는 이름으로 인해 진부하고 올드하게 느껴졌던 점을 장점으로 활용한 거예요. 세종문화회관이라는 브랜드를 사람들이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중요해요. 유구한 전통을 가지고 있지만 없어도 아쉬울 게 없는 곳이 아니라, 없어지면 안되는 곳으로 느끼게 하려는 모두의 분투가 담겨있습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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