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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소득 한푼도 안 쓰고 서울 집 사려면…13년, 19년, 32년 무엇이 맞나요? [부동산360]
천차만별 PIR(가구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
부동산원, KB국민은행·넘베오 제각각
‘PIR’ 집값 거품 판단 기준 어려워
단기간 급등해 위험…내집마련 여건 최악

[연합]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서울 아파트 가격은 거품인가?’ 한국부동산원이 최근 발행한 학술논문집 ‘부동산 분석’ 최신호에 실린 논문 제목이다. 이 논문에서 홍정의 한동대 경영경제학부 조교수 등 3인은 “서울의 주택가격 상승은 과열적 기대에 따른 거품보다는 정책 변화나 통화정책 등과 같이 주택의 근본가치 변화로 인한 것”이라며 “국내 부동산시장에 거품이 있다고 진단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금리가 오르고 자산시장 거품론이 확산하면서 주택시장에 대한 거품 논란도 다시 본격화하는 분위기다. 금리인상을 계기로 집값에 낀 거품이 빠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반면 주택 수급(주택 공급부족) 여건을 고려할 때 집값은 더 오를 것이라는 전문가도 많다. 현재 집값 수준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집값 거품 여부를 평가할 때 가장 많이 활용하는 지표가 ‘PIR(Price to Income Ratio)’이다. 소득 대비 집값이 얼마인지 나타내는 비율이다. 주택가격을 연간 소득으로 나눠 계산한다. 소득과 비교해 집값의 수준을 파악할 수 있으니, 몇 년을 벌어야 집을 살 수 있는지 가늠하게 한다.

그런데 이와 관련한 통계가 집계기관마다 제각각인 게 문제다. 정부의 공식 통계기관인 한국부동산원이 산정한 서울 PIR는 13.4다(2021년 12월 기준). 서울의 중위소득가구가 중간 수준의 주택을 살 때 13년 이상 소득을 한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가장 오랜 기간 집값 통계를 작성해온 KB국민은행이 뽑은 서울 PIR는 19.0이다. 한국부동산원 집계보다 5년 이상 더 긴, 19년을 모아야 한다는 의미다.

이보다 더한 PIR 집계도 있다. 국가·도시 비교 사이트 ‘넘베오’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PIR는 32.32나 된다(2022년1월 기준). 한국부동산원 집계보다 두 배 이상 높다. 수치 차이가 이 정도라면소비자로선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느 쪽 통계가 더 현실을 잘 반영한 걸까.

넘베오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482개 글로벌 도시 중 서울은 13위로, 역대 가장 높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고다. 프랑스 파리(19.15), 싱가포르(17.49), 이탈리아 로마(17.09), 영국 런던(14.5), 일본 도쿄(13.28), 미국 뉴욕(9.94) 등도 서울 주택보다 한참 아래다.

이 지표는 여러 언론에서 ‘한국 집값에 거품이 많이 끼었다’는 근거로 활용됐다. 이게 사실이면 서울 아파트값은 역대급으로 거품이 많이 끼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실제 변창흠 전 국토부 장관은 지난해 ‘서울의 적정 집값은 어느 정도로 보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OECD에서 적정 주택가격으로 연소득의 5배를 넘지 않는 것으로 본다”고 말한 적이 있다. PIR 기준 5를 넘으면 적정하지 않다는 시각이다.

OECD 기준으로 우리나라 연평균 가구소득인 6125만원(2021년 기준)의 5배인 3억625만원을 넘으면 거품이 끼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서울 중위 아파트가격이 9억6600만원(한국부동산원 기준)인 지금 상황과 너무나 동떨어진 인식 차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집값 거품론’의 근거가 됐다.

KB국민은행은 통계 작성기관마다 PIR 수치가 다른 건 표본 추출방법, 표본 단위, 분위별 평균 주택 산정방법, 소득 집계방법 등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PIR의 기준이 되는 집값을 실거래가로 적용하는 곳도 있고, 시세를 활용하는 곳도 있을 수 있으며, 평균값을 쓰느냐, 중위값을 적용하느냐에 따라서도 집값정보가 달라진다. 소득정보도 지역별로 세분화한 가구소득을 활용했는지, 전국 평균을 적용했는지에 따라 차이가 크다.

관련 연구도 있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등이 작성한 ‘PIR 산정 방식 및 그 수준에 대한 국제 비교’(2012년)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 기준, 집값 기준을 달리 적용해 서울 PIR(2010년 기준)를 뽑아보니, 9.0에서 17.6까지 2배 가까운 차이를 보였다.

국가 간 PIR를 비교하는 넘베오 통계에서 서울 PIR가 지나치게 높게 나온 건 자료 수집의 한계 때문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가마다 동일한 산정 방식과 기준을 적용하기 어려워 오류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사실 OECD 등 공신력 있는 기관에선 국가별·도시별 PIR를 비교하는 자료를 발표하지 않는다. 소득 수준과 저축률, 인구, 주택보급률, 물가, 유동성 등이 제각각인 나라의 PIR를 단순 비교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가난한 나라는 부자 나라에 비해 PIR가 평균적으로 많이 높다. 집값에 거품이 끼어서가 아니라 집값에 비해 소득이 지나치게 낮기 때문이다. 건축비 등을 고려한 최소한의 집값과 비교해 연간 소득이 몇 백만원도 안 되는 나라라면 PIR는 치솟을 수밖에 없다. 파푸아뉴기니, 콩고, 베네수엘라 등 아프리카나 중남미지역 국가 중엔 PIR가 100을 넘는 국가가 많다.

한 국가 내에서도 지역별로 PIR 차이가 크다. ‘뱅킹스트레티지’라는 미국 인터넷 금융정보 사이트에 따르면 올 1분기 기준 미국 로스앤젤리스와 샌프란시스코의 PIR는 각각 8.7, 8.6인데, 디트로이트와 클리블랜드 PIR는 각각 2.1, 1.8 수준밖에 안 된다.

현실적으로 가장 이해할 만한 PIR는 KB국민은행이 대출거래정보로 작성한 ‘KB아파트담보대출PIR’로, 2021년 4분기 기준 13.4다. KB국민은행이 부동산담보대출을 할 때 조사한 아파트 담보평가 가격 중 중위값을 이 은행 아파트 대출자의 연소득 중위값으로 나눈 것이다. 기준도 명확하고 실제 대출에 활용하고 있다.

이 수준이 과도한 것일까? 역시 논란이 불가피하다. 다만 단기간 너무 많이 오른 건 뭐든지 부작용이 크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던 2017년 2분기 이 지표는 8.8이었다. KB국민은행에서 부동산 담보대출로 돈을 빌린 사람들이 집을 사기 위해 필요한 기간이 8.8년에서 5년 만에 13.4년으로, 5년 가까이 늘었다는 이야기다.

이재국 금융연수원 겸임교수는 “PIR지표가 조사기관마다 제각각이어서 혼선을 주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어떤 집계로도 급등세를 보이고 있어 서민의 내 집 마련 여건이 어려워지고 있는 건 모두 인정해야 할 사실”이라고 말했다.

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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