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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성 주인공을 여성으로…정보라 소설집 '여자들의 왕'
환상문학 웹진 발표작 7편 묶어
"여성도 상상의 중심 될 권리 있어"

[헤럴드경제]우리가 흔히 아는 서양 영웅담이라면 용감한 기사가 악한 용에게 붙잡힌 가녀린 공주를 구출해야 한다. 그런데 작가는 틀에 박힌 판타지를 익살스럽게 뒤집었다. "구출 좋아하네."

최근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던 정보라 작가의 새 소설집 '여자들의 왕'(아작)은 주로 주인공이 남성이던 이야기의 무게 중심을 여성으로 옮겼다. 남녀, 선악의 천편일률적인 구도를 전복한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작품들이다.

이 소설집은 정 작가가 부커상 최종 후보 지명 이후 처음 내놓은 신작이다. 그간 환상문학 웹진 '거울'에 발표한 여성주의 판타지 작품 7편을 골라 묶었다. "여자들도 상상의 주인공이자 중심이 될 권리가 있다"는 작가의 말처럼 공포 색채가 짙은 부커상 후보작 '저주토끼'나 SF 장르 소설집 '그녀를 만나다'와 다른 결이다.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 건 일명 '공주, 기사, 용' 3부작이다. 각각 '높은 탑에 공주와', '달빛 아래 기사와', '사랑하는 그대와'란 제목이 붙었지만 하나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정보라는 작가의 말에서 "칼 들고 건들건들하며 '죽을래?' 같은 말을 내뱉는 공주를 주인공으로 쓸 생각"이었는데 기사도, 왕비도, 용도 다 각자의 처지와 사연이 있다는 생각에 쓰다 보니 연작이 됐다고 했다.

이들 소설은 서양 판타지의 초점을 공주와 용으로 바꿨다. 잔혹 동화 같기도, 판타지 만화 같기도 하다. 공주는 칼을 쓰는 데 능하고 "네 왕비랑 잘 먹고 잘살아", "거 진짜 말 안 듣네"란 말도 거침없이 한다. 작가 특유의 냉소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글맛에 쓱쓱 읽힌다.

다른 작품들에서도 전통적인 상상의 중심을 여성으로 옮겼다.

표제작 '여자들의 왕'은 성경에 나오는 사울, 그의 아들 요나단, 다윗 이야기를 여자로 바꿨다. 작가는 "아주 농염하고 화끈한 여자들의 관능적 권력 투쟁을 써보고 싶었다"고 한다.

또 다른 단편 '어두운 입맞춤'은 나도향의 '벙어리 삼룡이'와 아일랜드 작가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섞어 흡혈귀 이야기로 완성했다. 머슴인 삼룡이가 폭력적인 남편에 고통받는 주인집 마님을 좋아하는 구도는 두되, 마님을 인간의 피 냄새에 흥분하는 흡혈귀로 바꿔 인물의 취약성을 보강했다.

이 밖에 작가가 우즈베키스탄을 여행한 뒤 쓴 '사막의 빛', 대학원에서 배운 동슬라브 원초연대기와 외할머니 장례식장에서 보고 들은 집안 역사를 바탕으로 쓴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도 담겼다.

정보라는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은 나오기도 전부터 '남자 죽이는 여자들 이야기'라는 오해를 받게 되었다"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여자들의 이야기로 읽어달라"고 당부했다.

onlinenew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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