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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길용의 화식열전] 예방도 대응도 실패한 유동성 대란…경제위기로 번질 수도
비은행·부동산 탐욕적 사업 모델
3년전 위험인지…대응책에 소홀
경제 전반 금융위험 확산 불가피
정부 안이한 대응 불안 더 키울수
신속하고 확실한 진정대책 세우고
차입축소·구조조정 고통 각오해야
2019년 1월 금융위원회 ‘비은행권 거시건전성 관리 방안’ 中

“저금리에 따른 고수익·고위험 자산선호, 은행권 규제 강화로 인한 리스크 수반거래의 비은행권 쏠림, 보험·연금 규모 증가 등에 기인해 최근 금융시스템에 비은행권 비중이 커지고 있다. 비은행권에 내재된 특유의 리스크 증폭·전파 요인을 감안할 때 시스템리스크 가능성에 유의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2019년 1월 금융위원회는 ‘비은행권 거시건전성 관리 방안’을 발표한다. 경제관련 관계기관 합동으로 만들어진 방안이지만 주도한 것은 김용범 부위원장과 손병두 사무처장(현재 한국거래소 이사장)이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시기 끝자락에 만들어진 이 보고서는 개별 금융회사 차원의 건전성 규제와 감독으로는 비은행권 위험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개별 금융회사의 건전성과 별개로 시장 충격이 발생하면 금융시스템 건전성이 급속도로 악화될 ‘구성의 오류’ 발생 가능성도 우려했다.

‘구성의 오류’란 개별 금융회사 차원에서는 합리적 행위인 익스포져(exposure) 축소, 자산 헐값 매각 등이 동시에 일어날 경우 금융시스템 전반의 유동성 축소 및 리스크 유발이 가능하다는 개념이다. 특히 단기로 차입한 자금으로 단순 차익거래를 추구하면서 금융시스템에 부담만 주는 거래를 우려했다. 비은행금융 중개 시 담보나 거래상대방 신용위험을 고려하는 시장규율이 충분히 확립되지 못하고 있는 점도 꼬집었다.

당시 금융위는 예방하려고 나름 노력을 했지만 결국 부족했다. 제도를 정비하려면 정권과 정치권이 함께 팔을 걷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최근 자금시장을 강타한 부동산PF 사태는 당시에도 예상했던 위험이었다. 금리가 오르면 뻔히 터질 줄 알았던 폭탄을 그냥 계속 안고 있었던 셈이다.

2019년 1월 금융위원회 ‘비은행권 거시건전성 관리 방안’ 中

유증기가 가득한 방에 라이터를 켠 게 김진태 강원도지사라는 지적이 많다. 강원도가 이번 위기를 촉발한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어쩌다 방안에 유증기가 가득 차게 된 것인지를 따져볼 필요도 크다.

금융은 돈 장사다. 싸게 돈을 빌려 와서 비싸게 빌려주는 게 본질이다. 빌린 돈을 오래 쓸수록 이자를 더 내는 게 보통이다.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때는 단기금리보다 장기금리가 높다. 단기로 빌려와서 장기로 빌려주면 이익이 극대화된다. 하루 짜리 금리로 365일을 빌리는 게, 1년 금리로 한 번 빌리는 게 조달 원가가 싸다.

하지만 이는 시장에 유동성이 풍부할 때다. 단기금리가 장기금리보다 높아지는 불황 상황에서는 손실이 발생한다. 지금처럼 자금시장이 경색되면 단기로 빌린 돈을 상환해 달라는 요구가 늘어난다. 빌려준 돈을 회수할 시기가 아닌데 돈을 갚아야 한다면 다시 돈을 꿔야 한다. 자금시장 참여자들은 전문가들이다.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다. 돈을 못 구하면 부도가 나게 된다.

2019년 1월 금융위원회 ‘비은행권 거시건전성 관리 방안’ 中

레고랜드 사태는 지자체 보증을 받고 빌려 준 돈도 떼일 수 있다는 불안감을 촉발했다. 부동산 프로젝트라는 게 하루 이틀에 완성되는 게 아닌데, 금리가 싸다는 이유로 만기가 짧은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으로 조달하는 경우가 많았다. 만기가 짧아 빌려주는 입장에서도 빌리는 이의 신용을 깊이 고민할 필요가 없다.단기 자금시장에 충격이 와서 계속 만기 연장이 안되면 돈 줄이 끊기게 된다. 돈이 없어 공사가 이뤄지지 못하면 분양도 어려워져 애초 빌린 돈을 갚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프로젝트에 보증을 선 건설회사나 금융회사가 대신 돈을 갚아야 한다. 보증을 서면서 갚을 돈을 미리 준비했을 리 없다. 비싸게 돈을 꾸어야 하고 해당 건설사나 금융회사에 재무적 부담으로 이어진다.

부동산 프로젝트에 돈을 빌려주는 곳들은 보통 2금융권이다. 증권사, 여전사, 저축은행, 보험 등이다. 1금융권인 은행은 위험이 높은 자산에 대한 단기 대출을 꺼린다. 저축은행은 예금으로, 보험은 보험료로 자금을 조달한다. 여전사는 채권을 발행해 영업자금을 만든다. 증권사는 빌려 줄 돈을 환매조건부채권(RP), 기업어음(CP), 전자단기사채로 주로 조달한다. 2금융권 가운데 만기가 가장 짧은 편이다. 신용등급이 아주 높은 대형사 몇 곳을 제외하면 회사채로 자금을 조달하는 곳도 거의 없다. 회사채는 차입기간이 길어 금리가 높다. 심지어 대형사들도 채권보다는 발행어음을 통한 조달을 선호한다. 싼 값에 짧게 조달해 비싼 값에 길게 빌려주는 게 증권사들의 특기다. 부동산 시장이 호황일 때는 돈을 빌려줄 필요도 없었다. 부동산 프로젝트가 돈을 빌릴 때 보증을 서주는 도장만 찍어줘도 수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저금리 상황에서 자금시장에 유동성이 풍부할 때 얘기다. 금리가 오르기 시작하고 부동산 시장이 냉각되면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구조다. 보유한 국채를 내다 팔아 유동성을 확보하려 하면 시장금리가 높아진다. 최근 국고채 금리가 급등한 이유다.

2019년 1월 금융위원회 ‘비은행권 거시건전성 관리 방안’ 中

최근 금융투자협회가 한국은행에 애타게 도움을 요청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10조원이 넘는 부동산 프로젝트 금융(PF)이 부실화되면 엄청난 대출과 보증을 선 증권사들이 줄도산 위기에 처할 수 있다. 발권력을 가진 한은이 시장에 충분한 유동성을 공급하겠다고 나서야 시장 불안이 가라 앉을 수 있다. 긴축적 통화정책을 펼치고 있는 마당에 유동성을 풀어야 하는 모순적 결정이 필요하지만, 지금 은 당장 발등의 불을 끄는 게 우선일 수 있다. 자금시장 위기는 건설사나 금융회사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다. 일반 기업들도, 가계도 자유롭지 못하다.

경기가 나빠져서 매출과 이익이 줄어들면 현금이 줄어들게 된다. 적자라도 나면 돈을 빌려와 메꿔야 한다. 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서 실적도 나빠지는 기업들에 길게 돈을 빌려줄 이들은 적다. 결국 1년 내에 갚아야 할 단기차입금이 늘어나게 된다. 실적 악화에 이자부담까지 겹치게 되면 기업입장에서는 씀씀이를 줄일 수 밖에 없다. 위축된 경기에 맞도록 생산을 줄이고 인건비를 줄여야 한다. 돈을 많이 빌린 기업들은 이자율 상승에 따른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빚과 비용을 줄여야 한다. 구조조정이다. 가계 소득 감소로 이어진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수준은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이다. 소득이 줄면 이자 부담이 커진다. 이자부담에 자산을 매각하면 자산가격이 하락한다. 기업들도 부족한 돈을 구하기 위해 보유자산을 팔아야 할 상황이 올 수 있다. 자산가격이 담보가치를 하회하면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는 부실 위험이 커진다.

2019년 1월 금융위원회 ‘비은행권 거시건전성 관리 방안’ 中

최근 금융시장에서 난 불이 경제로 옮겨 붙은 영국에서는 재무장관 출신인 경제전문가에 총리직을 맡았다. 우리나라도 자금시장에서 난 불이 큰 불로 번질 조짐인데 소방관들이 불안하다. 과거 외환위기 때를 떠올리게 한다. 1997년 당시 “IMF가 뭐꼬”라던 김영삼 대통령의 경제 인식수준은 국가 부도로 이어졌다.

지금 경제부총리는 “그래도 괜찮다”고만 하고, 한은 총재는 미국만 따라가려는 한다. 금융위원장은 ‘강 건너 불 구경하듯’ 안이하고, 금융감독원장은 “나쁜 놈들만 잡겠다”는 자세다. 정치인인 부총리이고 10년 넘게 한국을 떠나있던 한은 총재다. 느닷없이 장관이 된 금융위원장, 평생 경제사범만 잡던 금감원장이다. 이들을 임명한 윤석열 대통령의 현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 수준도 궁금하다. 이들 경제팀 인사에는 간여했을 대통령 비서실장은 대통령실 경험이 가장 많은 경제관료 출신이지만 공교롭게도 경제위기 때에는 핵심에서 비껴나 있었다. 부자감세도 모자라 왜 자산가격이 하락하고 실업자가 늘어날 상황을 앞두고 공공기관 자산매각과 인원축소 방침이 나오는 지도 모르겠다. 영국의 사례를 봐도 미덥지 않은 경제팀은 시장 불안을 키워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지금이라도 각성했으면 싶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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