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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대의 고민·20대의 성장통…보편적인 ‘나’의 이야기로 ‘세계 정상’에 [BTS 10주년]
2013년 데뷔부터 ‘나에 대한 이야기’
10대의 꿈·고민 담은 ‘학교 3부작’
20대의 성장통 그린 ‘화양연화’ ‘윙즈’
‘나를 사랑하라’는 메시지 ‘러브 유어셀프’
‘팬데믹 3부작’은 희망과 존재의 증명
‘흙수저 아이돌’은 지난 10년 사이 세계 팝시장을 뒤흔드는 ‘거물’이 됐다. 방탄소년단의 아이덴티티는 노랫말에서 나온다. 방탄소년단과 여타 K-팝그룹의 큰 차이점은 이들은 ‘자신들의 노래’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빅히트뮤직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어제 실수했더라도 어제의 나도 나이고, 오늘의 부족하고 실수하는 나도 나이며, 내일의 좀 더 현명해질 수 있는 나도 나입니다.”(2018년 9월 RM의 유엔 연설 중)

‘흙수저 아이돌’은 지난 10년 사이 세계 팝시장을 뒤흔드는 ‘거물’이 됐다. 그사이 그룹의 이름이 담은 의미도 달라졌다. ‘사회적 편견과 억압을 막아낸다’는 의미의 ‘불릿프루프 보이즈(Bulletproof Boys)’에서 ‘비욘드 더 신(Beyond The Scene)’으로 진화했다. ‘매 순간 청춘의 장면들을 뛰어넘는다’는 의미가 덧대어졌다. 이 문장은 방탄소년단의 정체성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말이다.

방탄소년단이 다른 K-팝그룹과 다른 점은 노래에서 그룹의 아이덴티티를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방탄소년단은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지난 10년간 꾸준히 자신들의 이야기를 해왔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방탄소년단 데뷔를 준비하던 시절부터 ‘주문’한 내용이기도 하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방탄소년단은 자전적인 이야기를 가사로 써냈다는 것이 이 팀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며 “자신과의 또래, 성장기에 경험할 수 있는 이야기,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꾸준히 써왔다”고 말했다. 김진우 써클차트 수석 연구위원도 “방탄소년단 자신들의 이야기이면서 리스너의 입장에서 나의 이야기이기도 한 가사들이 마음을 건드린 점이 컸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 안에 10대를 지나 20대를 살아내고 30대를 마주한 ‘청춘의 얼굴’이 담겼다. 방탄소년단은 언제나 자신과 또래의 이야기를 하는 그룹이었다.

2016년 10월 앨범 ‘WINGS’활동 당시의 방탄소년단. [빅히트뮤직 제공]
10대의 고민·20대의 성장통…‘청춘의 이야기’

2013년 데뷔 앨범 ‘투 쿨 포 스쿨(2 COOL 4 SKOOL)’은 ‘학교 시리즈’ 3부작의 시작이었다. 애초 힙합그룹으로 출사표를 던진 방탄소년단의 데뷔 앨범엔 10대의 꿈과 고민이 담겼다. 적당히 반항적이고, 적당히 거칠었다. ‘네 꿈은 뭐니?’라고 물으면 ‘에브리바디 세이 노(Everybody say NO)’라고 답하는 식이다. 데뷔곡 ‘노 모어 드림(No More Dream)’에서다. 학교 3부작의 마지막 곡은 ‘상남자(Boy In Luv)’다. “되고파, 너의 오빠”라는 노랫말처럼 소년의 사랑을 담았다.

2015년부터는 ‘화양연화’ 시리즈를 시작했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엔 그사이 부쩍 자란 멤버들과 20대 청춘의 이야기를 담았다. 물리적 나이로 소년은 벗어났지만 아직은 어른이 되지 못한 청춘이자, 소년에서 청년으로 넘어가는 ‘한 시기’를 살고 있는 세대의 이야기다. 가장 아름답지만 위태로운 청춘의 이야기를 담았다. ‘화양연화’와 함께 방탄소년단의 질적·양적 성장이 시작됐다. 국내에선 음원차트와 음악방송 1위를 휩쓸며 두각을 보였다. 해외팬들에게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2016년 ‘윙스(WINGS)’ 앨범에 청춘의 ‘성장통’을 치열하게 담아냈다. 이 앨범은 특히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테마로 세계관을 구축했다. ‘윙스(WINGS)’ 타이틀곡 ‘피 땀 눈물’을 통해선 국내에서도 대중성을 확보했고, 수록곡 ‘봄날’은 BTS표 ‘연금송’으로 자리 잡았다. 성장통을 겪는 청춘을 위로하는 노래다.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여관 오멜라스는 어슐러 K 르 귄의 단편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에서 따왔다.

정규 3집 앨범 ‘러브 유어셀프 ‘전’ 티어(LOVE YOURSELF ‘轉’ Tear)’활동 당시의 방탄소년단. [빅히트뮤직 제공]
‘나’에서 확장한 보편적 메시지 “나를 사랑하라”

2017년부턴 마침내 ‘러브 유어셀프(LOVE YOURSELF)’ 시리즈가 시작된다. 전 세계 아미가 “방탄소년단을 만나 삶이 달라졌다”며 꼽는 앨범 시리즈다. 2017년 9월 발매한 미니 5집 ‘러브 유어셀프 승 ‘허’ (LOVE YOURSELF 承 ‘Her’)’부터 정규 3집 ‘러브 유어셀프 전 ‘티어’(LOVE YOURSELF 轉 ‘Tear’)’, 3집 리패키지 ‘러브 유어셀프 결 ‘앤서’(LOVE YOURSELF 結 ‘Answer’)’로 2년 6개월간 이어진 이 시리즈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시작’이라는 메시지로 마침표를 찍는다.

“어쩌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나 자신을 사랑하는 거야/ 솔직히 인정할 건 인정하자/ 니가 내린 잣대들은 너에게 더 엄격하단 걸/ 니 삶 속의 굵은 나이테, 그 또한 너의 일부/ 너이기에 이제는 나 자신을 용서하자”(‘앤서 : 러브 마이셀프’ 중)는 것이 이들이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방탄소년단은 이 시리즈와 함께 유니세프와 함께 ‘러브 마이셀프(LOVE MYSELF)’ 캠페인을 시작했다. 방탄소년단과 음악의 메시지가 더 짙은 보편성을 가지게 된 때다.

방탄소년단의 태생은 캠페인의 추동엔진이 됐다. 음악을 통해 스스로를 증명해온 소년들의 성장 과정은 그룹의 정체성을 제대로 드러낸다. 소위 말하는 중소 기획사 출신의 ‘흙수저 아이돌’이라는 꼬리표는 비주류와 약자들의 현재와 연결됐다. 세상에서 가장 약한 영웅을 이야기한 ‘앙팡맨’(2018), 태양계 행성에 속해 있다가 지위를 박탈당한 명왕성의 이야기를 담은 ‘134340’(2018)도 이들의 서사와 닮았다.

2018년 8월 ‘아이돌(IDOL)’ 활동 당시의 방탄소년단. [빅히트뮤직 제공]

방탄소년단의 팬덤도 비주류, 소수자 사이에서 단단히 이어져 있다. 이들은 성별, 연령, 인종, 장애의 경계에 선 소수자를 포용하는 동시대성을 지닌 팝스타이자 ‘코스모폴리탄’으로서 행보를 이어갔다. 캔디스 앱스 로버트슨 노스캐롤라이나대학 교수는 “방탄소년단의 음악과 메시지는 인권, 사회정의, 다양성 등을 장려하는 글로벌 시민의 정의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 2018년 “어느 나라 출신이든, 피부색이 무엇이든, 성 정체성이 어떻든 여러분에 관해 얘기해 달라”고 한 RM의 유엔 연설은 전 세계 아미에게 ‘결정적 순간’이 됐다.

때마침 주류 음악계도 달라지고 있었다. 백인, 남성, 영미권 중심의 문화는 남미, 아시아 등의 비영어권으로 시선을 확장했다. 당시 루이스 폰시의 ‘데스파시토’는 유튜브 최다 조회 수인 66억뷰를 기록하며 ‘공전의 히트’를 치기도 했다. 방탄소년단에게 더 많은 기회가 열린 시기였던 셈이다.

이 시리즈를 통해 방탄소년단은 본격적으로 세계무대에서 주목받는다. 2017년 저스틴 비버를 꺾고 K-팝 아티스트 최초로 빌보드 뮤직어워드에서 ‘톱 소셜아티스트’상을 받는다. 이 부문 시상이 폐지된 2022년까지 5년 연속 트로피를 챙겼다.

그럼에도 방탄소년단은 아직 저평가된 아티스트라는 평가가 많았다. 여전히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안에만 존재하는 스타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난 2018년 시리즈의 3편 격인 ‘러브 유어셀프 전 ‘티어’’로 빌보드 메인 앨범차트인 ‘빌보드 200’ 1위에 오르며 예사롭지 않은 기세를 확인했다.

2019년 ‘맵 오브 솔 : 페르소나(MAP OF THE SOUL : PERSONA)’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Boy With Luv)’활동 당시의 방탄소년단. [빅히트뮤직 제공]
‘영혼의 지도’ 속 내면의 이야기

2019년부터는 ‘영혼의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맵 오브 더 솔(MAP OF THE SOUL)’ 시리즈다. 이 시리즈는 분석심리학의 기초를 세운 카를 구스타프 융의 이론을 30년간 연구한 머리 슈타인의 개론서 ‘융의 영혼의 지도’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이때의 방탄소년단은 그들의 내면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시리즈를 통해 방탄소년단은 다시 ‘처음’을 되돌아봤다는 점이다. ‘학교 3부작’의 요소를 속속 가져오며 그때와 달라진 지금을 다시 이야기한다.

우선 이들은 ‘맵 오브 솔 : 페르소나(MAP OF THE SOUL : PERSONA)’를 통해 그들에게 씌워진 ‘사회적 가면’을 들여다봤다. 스스로를 이카로스에 빗댔다. 이카로스는 아버지의 경고에도 새처럼 나는 것이 신기해 태양 가까이 날다 죽은 인물이다. ‘이카로스의 날개’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동경을 의미한다. 팝 장르인 ‘작은 것들을 위한 시(Boy With Luv)’에선 “저 하늘을 높이 날고 있어/ (그때 니가 내게 줬던 두 날개로)/ 이제 여긴 너무 높아/ 난 내 눈에 널 맞추고 싶어”라고 노래한다. 영어 제목은 미니 2집 ‘스쿨 러브 어페어(Skool Luv Affair)’의 타이틀곡 ‘상남자’(2014년)에 붙은 영제 ‘보이 인 러브(Boy In Luv)’와 같다. 희망에 대한 이야기도 놓치지 않았다. “또다시 뛰고, 또 넘어지고, 수없이 반복된데도 난 또 뛸 거라고/ 관둘 거냐고? 노. 네버(No. Never)”(소우주 중)라고 노래한다. 이 앨범 이후 방탄소년단은 영국 런던 웸블리스타디움에서 역사적인 공연을 했다.

이듬해 나온 ‘맵 오브 솔 : 7’은 데뷔 7년차를 맞은 방탄소년단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번엔 자아와 그림자를 뜻하는 ‘에고(Ego)’와 ‘섀도(Shadow)’가 주요 개념으로 쓰였다. 앨범의 타이틀곡 ‘온(ON)’은 미니 1집 ‘O! RUL8,2?(Oh! Are You Late, Too?)’의 타이틀곡 ‘N.O’(2013)의 제목을 뒤집었다. 이 곡으로 방탄소년단은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인 ‘핫 100’에서 당시로선 자체 최고 성적인 4위를 기록했다. 이 앨범은 2020년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실물 앨범이기도 하다. RM은 당시 “우리가 느끼고 있는 고민은 비단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비슷하다”며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은 음악이 범시대성을 띨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룹 방탄소년단. [빅히트뮤직 제공]
팬데믹 3부작과 ‘존재의 증명’

같은 해 감염병이 돌고 마침내 ‘팬데믹 3부작’이 시작된다. 본격적으로 주류 팝시장의 공략이 시작된 해다. 전략은 성공했다. 진지하고 심각한 메시지보다 메인 스트림이 선호하는 장르의 곡에 코로나 시대의 무기력 속에서 희망을 노래했다. 노랫말은 영어로 썼다.

정민재 평론가는 “기존의 팝스타들이 철저하게 대중성을 겨냥한 노래로 성공을 거둔 뒤 작품성을 강조한 노래로 이동하지만 방탄소년단은 역행했다”고 분석했다.

2020년 ‘다이너마이트(Dynamite)’로 빌보드 ‘핫 100’ 1위에 올랐다.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같은 해 ‘새비지 러브(Savage Love)’와 ‘라이프 고스 온(Life gose on)’까지, 내놓는 신곡마다 ‘핫 100’ 1위에 올랐고, 이듬해 ‘버터’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 콜드플레이와의 협업곡 ‘마이 유니버스(My Universe)’ 등이 줄줄이 빌보드 ‘핫 100’ 1위를 찍었다.

특히 2021년엔 불과 3개월 사이에 ‘핫 100’ 1위곡을 세 곡이나 냈다. 이는 1964년 비틀스 이후 가장 빠른 속도였다. 이 시기 곡으로는 총 6곡, 횟수로는 17번 ‘핫100’ 1위의 주인공이 됐다. 이후 올해 지민이 첫 솔로곡으로 ‘핫 100’ 1위를 추가했다.

그룹 방탄소년단의 9년 활동을 돌아본 앤솔러지 앨범 ‘프루프(Proof)’. [빅히트뮤직 제공]

지난해는 방탄소년단이 자신들의 9년 활동을 돌아보고 마침표를 찍은 해다. 지난 활동을 돌아본 앤솔러지 앨범 ‘프루프(Proof)’에선 일종의 ‘심경 고백’이 이어진다. ‘K-팝 센세이션’으로 불리며 세계무대로 향했던 방탄소년단이 현재의 자신을 돌아보고, 최정상에 선 불안과 두려움을 고백한다. 그러면서 “아직 최고의 순간은 오지 않았다”고 노래한다. 단기간에 여러 성취를 거둔 방탄소년단의 숨고르기이자 자기 목소리를 담아온 음악으로의 회귀 의지를 담아낸 앨범이다. 이 앨범 발표와 함께 그룹활동에 잠시 쉼표를 찍고, 멤버들의 개인활동이 시작했다. 맏형 진과 제이홉은 입대했다.

정 평론가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가사가 조금은 투박하긴 했지만 굉장히 솔직했다는 점이 방탄소년단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K-팝이라고 하면 모든 면에서 완벽하고, 완벽을 기하는 이미지를 만들어 왔는데 방탄소년단이 나오면서 K-팝도 자기 이야기를 하는 가수가 나올 수 있다는 경향이 생겨나게 됐다”고 덧붙였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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