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흘러도 왜 '사랑'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지지 않는 걸까.
2000년대 초반 방송가를 휩쓸었던 '로맨스 예능'이 다시 브라운관을 점령하고 있다.
스타들이 서로의 사랑찾기를 돕는 SBS '썸남썸녀'를 비롯해 중년 싱글 남녀의 사랑과 우정을 담은 '불타는 청춘'(SBS), 외모를 감춘 채 소개팅을 하는 '마녀와 야수'(KBS). 여기에 과거 큰 인기를 끌었던 '강호동의 천생연분'의 리바이벌 '천생연분 리턴즈'(MBC every1)까지 요즘 TV는 그야말로 '달달한' 봄 냄새가 풍긴다.
'썸남썸녀'의 연출을 맡은 장석진 SBS PD는 예능 프로그램이 육아•여행•요리를 거쳐 또다시 '로맨스'를 찾는 이유에 대해 "사랑이야말로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 연의 고민"이라며 "화려해 보이는 스타들이 사랑에 상처받고 사랑에 고민하는 모습에 시청자들이 동질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랑의 짝대기'부터 '0표 클럽'까지 '로맨스 예능'의 역사는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MBC가 1994년부터 2001년까지 방송한 '사랑의 스튜디오'가 시초 격이다.
이 방송은 7년이 넘는 방송 기간 일반시청자와 연예인 등 2천800여 명이 출연해 47쌍이 실제로 결혼에 골인하는 등 큰 호응을 얻었다.
이후 SBS '남희석 이휘재의 멋진 만남', MBC '이브의 성-사랑의 힘', KBS 2TV '자유선언 오늘은 토요일-서바이벌 미팅' 등 이른바 '짝짓기' 프로그램이 줄을 이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MBC '목표달성 토요일-애정만세'와 '강호동의 천생연분', KBS '산장미팅 장미의 전쟁' 등 연애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봇물 터지듯 이어졌다.
일반인, 연예인 할 것 없이 제한된 시간 안에 이성의 마음을 얻기 위해 화려한 춤과 개인기를 펼쳤고 시청자들은 환호했다.
톱스타들이 이성에게 호소하기 위해 춤과 개인기를 선보이며 애쓰는 모습이나 1 표도 얻지 못한 '0표 클럽'이 되어 주눅이 든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묘한 쾌감을 주기도 했다.
연애 버라이어티가 인기를 끌면서 '산장미팅'에 출연했던 남상미, 이윤지, 윤정희, 임성언 등은 연예계에 입성했다.
◇ '가상연애' '다큐' 각양각색 포맷
'짝짓기' 프로그램들이 비슷비슷한 포맷, 선정성에 대한 비판과 함께 하나 둘 자취를 감춘 사이 MBC는 스타들의 가상 결혼생활을 그린 '우리 결혼했어요'를 들고 나왔다.
2008년 시작돼 4번째 시즌을 진행 중인 '우리 결혼했어요'는 연애가 아닌 결혼이라는 옷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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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
커플이 되는 과정이 아니라 이미 커플이라는 설정 아래 서로 가까워지는 스타들 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제작진이 임의로 정한 이성과 커플을 이룬 스타들은 인사를 나누자마자 신혼집으로 향한다. 어색한 사이지만 한 지붕 아래서 음식을 만들어먹고 데이트를 하면서 금세 친밀한 관계가 된다.
상대의 발을 닦아주고 로맨틱하게 세레나데를 불러주는 스타의 모습에 팬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출연자가 사실은 다른 이성과 실제 연애 중이라는 사실이 잇따라 기사화되면서 '우리 결혼했어요'는 '다 짜고 치는 것 아니냐'는 냉소를 받기도 했다.
'우리 결혼했어요'가 팬들의 대리만족을 위한 예능이었다면 SBS의 리얼연애다큐 멘터리 '짝'은 남의 연애를 관찰함으로써 시청자가 각자의 연애관을 되돌아보게 했다.
2011년부터 약 3년간 방송한 '짝'은 일반인 출연자들이 일주일간 '애정촌'에 머물며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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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
거짓말과 이간질, 잔인함이 압축적으로 보이는 방송 내용이 지나치게 자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결국 출연자가 촬영 기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으로 폐지된 '짝'은 그러나 출연자들의 '진정성'이 시청자의 마음을 샀다는 평을 받았다.
◇'게임'에서 '관찰'로…새로운 '로맨스'
봄과 함께 찾아온 새로운 '로맨스 예능'은 하나같이 '진정성'을 내세우고 있다.
3~4명씩 팀을 이룬 스타들이 각자의 집에 팀원들을 초대, 함께 지내면서 서로의 연애코치가 되어 조언을 해주는 포맷의 '썸남썸녀'는 요즘 대세 '관찰 예능'에 로맨스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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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
청순함의 대명사였던 채정안, 예능 초보 윤소이와 이수경이 기존의 이미지와 달리 솔직하고 털털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기대를 모은다.
제작진은 "판을 만들어줬을 뿐 출연자들의 행동에 관여할 생각이 없다"며 "진정성을 무기로 방송을 위한 연애가 아닌 진짜 사랑을 찾아보겠다"고 호언장담했다.
'불타는 청춘'은 김국진, 강수지, 양금석, 김동규, 김도균 등 제2의 연애 전성기를 꿈꾸는 40~50대의 스타들을 캐스팅해 중년 마음잡기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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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
달리기하듯 연애상대를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편안한 복장으로 시골집에 모여 앉아 음식을 해먹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007 빵' 같은 게임을 하며 천천히 서로를 알아가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여기에 상상하지 못했던 김국진과 강수지의 '케미', 우직하게 양금석만을 바라보는 순정남으로 변신한 헤비메탈 밴드 '백두산'의 기타리스트 김도균 등 색다른 재 미가 넘친다.
KBS의 '마녀와 야수'는 외모지상주의가 팽배한 현실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일반인 남성 또는 여성 1명이 이성 5명과 데이트한 뒤 1명씩 탈락시키는 방식인 데 모든 출연자의 외모를 특수분장으로 가린 채 진행돼 얼굴 대신 상대방의 태도나 말투, 성품에 집중하게 된다.
제작진은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고 사랑을 찾아가는 모습을 진솔하게 담아내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