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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집단감염'에 커지는 성소수자 혐오…'아웃팅' 우려

(연합뉴스)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경기도 용인 66번 확진자 A(29)씨가 다녀간 서울 이태원 클럽을 중심으로 집단감염 사례가 연일 확인되자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유흥업소에 방문한 행적을 두고 비판 목소리가 거세다.

A씨가 다녀간 업소에 성소수자들이 주로 찾는 '게이 클럽'이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성소수자 집단이 도매금으로 비난의 화살을 맞는 일이 벌어졌다. 이와 관련한 '아웃팅'(동성애 등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이 타인에 의해 강제로 공개되는 것) 우려에 확진자 동선 공개 범위 논란도 일고 있다.

전문가들은 재난 상황에서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에게 차별과 혐오가 가해지는 현상이 반복돼 왔다며, 이같은 혐오는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 '게이클럽' 네 글자에 쏟아진 성소수자 혐오

용인 66번 환자 A씨는 이달 6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동선 추적 결과 그는 확진 판정을 받기 나흘 전인 이달 2일 새벽 이태원 일대 여러 클럽을 다닌 것으로 드러났다. 클럽 안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A씨의 확진 사실은 6일 언론을 통해 처음 알려졌지만, 다음날인 7일 A씨가 이태원에서 '게이 클럽'을 방문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논란이 급속도로 확산했다. 당일 국내 포털사이트에는 '게이', '게이 클럽' 등 단어가 종일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에 클럽을 방문한 점 자체가 비판 대상이 됐지만, 익명성이 보장되는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성소수자 집단 전체를 향한 비난 여론이 등장했다.

한 누리꾼은 관련 기사에 단 댓글에 "신천지에 이어 게이까지 비정상적인 집단이 정상적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며 "부산 클럽은 무사히 넘어갔는데, 게이 클럽에서는 무슨 짓을 하길래 감염되는지 모르겠다"고 썼다. 해당 댓글은 1천여회 이상 추천을 받았다.

또 다른 기사에는 "코로나19보다 심각한 에이즈(AIDS·후천성 면역결핍증)가 확산하는 재앙이 시작될 것"이라며 "정신을 차리고, 동성애 차별금지법을 막아내자"는 댓글도 달렸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최근 안정세를 찾은 코로나19 사태가 성소수자 집단 때문에 다시 확산한다는 취지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A씨가 자신의 성적 지향을 스스로 밝힌 적이 없음에도 해당 클럽을 방문했다는 이유만으로 성 소수자로 단정되고, 이어 성소수자 집단 전체가 싸잡아 비난받는 상황이 됐다.

성소수자 인권단체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는 최근 낸 성명에서 "질병이 있다는 이유로 개인의 성적 지향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며 "코로나19를 빌미 삼아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낙인을 공고히 하려는 모든 시도에 단호히 맞서겠다"고 했다.

◇ '아웃팅' 우려 제기…동선 공개 적절성 논란도 재점화

확진자의 구체적 동선이 공개되고, 그가 방문한 클럽의 특성이 부각되자 성소수자들에 대한 '아웃팅' 논란도 불거졌다. 확진자와 동선이 겹친 경우 의료기관을 찾아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검사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성 정체성이 원치 않게 드러날 우려가 있다는 얘기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는 지난 7일 논평에서 "진료를 받는 것이 당일 그 장소에 있었음을 증명하고 곧 성적 지향을 드러내는 것으로 귀결되는 상황"이라며 "아웃팅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조성하는 언론보도는 확진자와 접촉한 이들을 위축시키고 방역망 밖으로 숨어들게 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아웃팅에 대한 두려움으로 성소수자들이 코로나19 검사 자체를 피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의 한 사립대 커뮤니티에서 자신을 성소수자라고 밝힌 한 누리꾼은 "예전에 내가 있었던 게이 술집에 확진자가 다녀간 적이 있다"며 "주위 사람들이 (내가 그곳에 갔다는 사실을) 알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썼다.

확진자별 이동 경로와 방문 장소·일시를 상세히 공개하는 것이 과도한 사생활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는 코로나19 사태 초반부터 줄곧 나왔다.

지난 3월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도 확진자 동선 공개와 관련해 "필요 이상의 사생활 정보가 구체적으로 공개되다 보니 확진 환자들의 내밀한 사생활이 원치 않게 노출되는 인권침해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며 "나아가 인터넷에서 해당 확진 환자가 혐오의 대상이 되는 등 2차 피해까지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이후 확진자의 거주지 세부주소나 직장명 등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는 공개하지 않도록 하고 정보공개 기간을 제한하는 등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포했다. 하지만 현재 지방자치단체가 공개하는 정보만으로도 주변인들이 당사자를 유추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66번 확진자의 경우 용인시는 성별과 나이, 주소지 행정동, 차량 접촉사고 발생일시 등을 공개했다. 서울 용산구는 관내 이동 경로를 공개할 때 '타 시도 거주 20대 남성'으로만 표기했으나 양성 판정 시각 등을 토대로 66번 확진자임을 유추할 수 있다. 그밖에 직장 소재지와 직종 등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전병율 차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0일 "개인별로 동선을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당일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들이 지나간 장소를 포괄적으로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

◇ "재난상황에 소수자 인권침해 빈번…혐오는 방역 도움 안 돼"

전문가들은 이번 용인 66번째 환자 확진 이후 성소수자에게 가해진 비난은 재난 등 위기상황에서 되풀이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이런 혐오와 차별은 오히려 방역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과대학 교수는 "역사적으로 위기나 재난 상황에서 취약한 계층을 희생양 삼아 책임을 떠넘기고 혐오와 차별을 하는 일은 계속 반복됐다"며 "현시점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는 문제의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성적 지향은 방역에 무의미한 정보일 뿐 아니라 이를 공개하는 것은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 소지가 있고 방역에도 도움이 안 된다"며 "접촉자들을 파악해야 하는데 그런 정보가 공개되면 누가 스스로 방문 사실을 알리려 하겠느냐"고 말했다.

김 교수는 "감염 위험에 노출됐는지 파악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는 확진자가 다녀간 장소와 시간이지 다녀간 사람이 누구인지가 아니다"라며 "프라이버시가 침해되면 추후 유사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도 자발적 추적이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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