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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rf) |
'이용자 전원 신상공개' 여론에…근거 없이 특정인 신상 마구잡이 공개도
"텔레그램 '박사방' 가해자들 신상입니다. 본인이 가해자가 아니시라면 댓글로 욕을 써주세요."
지난 23일 한 페이스북 계정에는 남성 7명의 얼굴과 출신대학,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등 신상을 담은 사진들이 게시됐다. 이 글은 7천700여명이 '좋아요'를 눌렀고, 1천600여번 공유됐다. 이들을 비난하는 댓글은 1천200여개가 달렸다.
일부 누리꾼은 이들이 박사방을 이용했다는 제대로 된 증거가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댓글을 달았다. 그러자 작성자는 "사실이든 아니든 책임질 생각을 하고 글을 올렸다"며 "사진 주인공들이 해명 글을 썼는데 앞뒤가 안 맞는다"고 반박했다.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성 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4)이 검거돼 신상이 공개된 가운데 박사방 이용자들의 신상까지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온라인상에서 별다른 근거 없이 마구잡이로 신상이 공개돼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최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특정 남성들의 신상을 올리는 이른바 '신상 박제' 계정이 여럿 등장했다. 누리꾼들이 '박사방 이용자'라며 제보한 이들의 신상정보다.
하지만 신상이 공개된 남성들이 박사방 이용자라는 증거가 불분명한 사례도 일부 확인됐다.
지난 24일 한 트위터 계정에 '박사방 이용한 XXX'이라며 한 남성의 이름과 출신학교 등이 올라오자 9천200여명이 이 글을 리트윗했다.
일부 누리꾼이 "이 남성이 정말 박사방을 이용한 게 맞느냐"고 묻자, 작성자는 "저도 퍼온 글"이라며 "온라인 커뮤니티에 처음 이 글을 올린 분이 확실하다고 얘기했다. 이미 퍼진 김에 그냥 놔두자"고 대답했다. 그러자 자신을 해당 남성과 같은 학교 학생이라고 밝힌 누리꾼이 이 글에 "확실한 사실이 아니다"라는 댓글을 남겼다.
텔레그램을 이용하는 남성이라는 이유로 싸잡아 박사방 이용자라고 몰리는 경우도 있다.
한 누리꾼은 "갑자기 여성 지인들이 텔레그램에 가입하더니 어떤 남성들이 텔레그램을 사용하는지 확인하고 있다"며 "텔레그램을 쓴다는 이유만으로 성범죄자 취급을 받을까 봐 무섭다"는 글을 올렸다.
한 대학생은 "스마트폰에 텔레그램을 설치하면 누가 접속했는지 볼 수 있다길래 한번 접속한 뒤 지웠는데, 내가 텔레그램에 접속했다는 메시지가 뜨자 한 친구가 '너 그런 거(박사방) 하냐'고 문자를 보냈다"며 "텔레그램에 접속했다는 것만으로 박사방 가해자가 아님을 증명해야 하는 거냐"고 말했다.
누명을 쓴 당사자가 해명 글을 올리는 경우도 있었다. 텔레그램을 이용한다는 이유만으로 박사방 이용자로 몰렸다는 대학생 A씨는 SNS에 "저는 박사방 사건의 가해자도 아니고 참여자도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며 "일반적인 텔레그램 사용자를 박사방에 있는 사람들과 같은 취급을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SNS에서 벌어지는 '신상 박제'는 범죄가 범죄를 낳은 상황"이라며 "성 착취물을 유포한 범죄로 인해 개인정보를 무분별하게 유포하는 파생 범죄가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