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봉사단체 상인들 생업 미루고 달려와…집수리 대학 동아리도 참여
성동소방서 소방관·의용소방대도 힘 보태…피해자 "모든 것 포기했는데 너무 감사"
"김 사장! 여기 석고보드 한 장 더!"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성동구의 한 다가구주택 2층. 콘크리트 뼈대가 앙상하게 드러난 집안에서 10여명이 전기 배선작업, 합판·석고보드 부착, 페인트칠 등에 한창이었다.
서울 송파구 주민들로 이뤄진 봉사단체 '기부천사' 회원들과 서울 성동소방서 소방관 등은 이날 아침부터 초겨울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작업에 열중했다. 고려대 집수리 봉사동아리 '쿠홉'(KU-Hope) 한경완(21) 회장과 이겨레(25)씨도 현장에 나와 장판·도배작업을 준비하며 줄자로 벽과 바닥 길이를 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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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
1일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 건물 2층은 지난 10월 21일 보일러실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나 전소했다. 가전제품 등 집 안에 있는 물건도 모두 탔다.
이 집에서는 채연희(59) 씨가 남편과 함께 대학교 3학년, 고등학교 3학년 두 손주를 돌보며 살고 있었다.
이틀 뒤 성동소방서 화재조사담당관 허영준(38) 소방장은 경찰 등과 현장을 합동 감식하던 중 이웃 주민에게서 "여기 사는 가족은 기초생활수급대상자"라는 말을 들었다.
서울소방재난본부는 기초수급대상자 집에 화재 피해가 발생한 경우 복구 견적이 1천만원 안팎이면 기업 에쓰오일을 통해 840만원을 지원한다. 그러나 이번 사고에서 업체들은 견적을 2천500만∼3천만원씩 불렀다. 허 소방장은 "도저히 견적이 맞지 않아 지원받기를 포기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성동구에서 지원받은 폐기물 처리비용 1천만원으로 소방관들이 다 타버린 집기들을 치우던 지난달 4일, 생각지도 않은 도움의 길이 활짝 열렸다.
화재 피해 가구의 사정을 들은 송파소방서 소방관이 송파구 봉사단체 '기부천사'의 김순규(66) 회장에게 소식을 전했다고 한다. 김 회장은 바로 현장을 찾아 둘러본 뒤 견적을 내고는 재료비 정도에만 해당하는 1천180만원에 복구작업을 하겠다고 했다.
김 회장은 "이 가정 이야기를 듣고 무조건 도와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로 달려 나왔다"고 말했다. 기부천사는 현재 송파구 지역 소상공인 등 150여명이 회원으로 가입한 봉사단체로, 화재 복구작업은 이번이 두 번째라고 한다. 각자 생업을 뒤로하고 복구작업에 동참했다.
이들 덕에 작업 견적이 낮아져 에쓰오일에서 840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성동소방서도 119기금 200만원을 지원했다. 부족한 140만원은 기부천사 측에서 보태려 했는데, 성동구가 고려대 봉사동아리 '쿠홉'을 연결해준 덕분에 이 금액에 해당하는 도배·장판 작업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한경완 쿠홉 회장은 "2년간 여러 집을 수리했지만 전소된 집을 복구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동아리 회원 15명이 시공 작업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곳곳에서 도움의 손길이 답지하자 힘이 난 성동소방서 소방관 10여명도 휴무일마다 나와 타버린 벽지 제거와 도색 등 복구작업을 돕고 있다. 지역 주민으로 구성된 의용소방대도 힘을 보탠다.
철야근무 전 작업을 도우러 왔다는 허 소방장은 "오늘은 지붕 페인트칠을 하는데 전문가인 기부천사 회원분들을 보면서 따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봉사활동 25년차라는 성동소방서 여성의용소방대장 장경임(57)씨는 가스관 작업과 전기공사를 저렴하게 해줄 업자들을 수소문해 기부천사 회원들과 연결했다. 복구작업 참여자들의 식비도 지원하고 있다.
장씨는 "여성의용소방대원 10여명과 함께 복구작업을 돕고 있다"며 "의용소방대로 봉사한 지 21년 됐지만 이렇게 여러 단체에서 자발적으로 한 가정을 도우려 나선 것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채연희 씨는 "기적이 일어났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7년 전 불의의 사고로 딸을 잃고 손주들을 돌보며 살았다는 그는 "집이 다 타버렸을 때 전 재산인 보증금 3천만원을 그대로 날릴 위기였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었다"며 "이렇게 많은 분이 도와줘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