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피해자가 폭행이나 협박 없이 '은밀한' 추행을 겪었지만 이런 일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상태였다면 강제추행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는 추행에 강제성이 없다면 '기습'을 당해야 한다는 것으로 강제추행죄 성립 요건을 매우 엄격히 해석한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서울 서부지법 형사11부(심우용 부장판사)는 자신의 집에서 처제를 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A(49)씨에게 징역 2년6월을 선고했다고 18일 밝혔다.
A씨는 작년 7월 자신의 집 안방에서 잠을 자려던 처제 B씨의 몸을 만지고, B씨가 다른 방으로 옮기자 따라가 이불을 덮어주는 척하며 다시 추행한 두 가지 혐의로 기소됐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첫 번째 성추행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했지만 뒤이은 추행은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의 행위가 '폭행 또는 협박으로 저항할 수 없게 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기에 전형적인 강제추행은 아니고 강제추행의 일종인 '기습추행'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기습추행이란 피해자의 부주의를 틈타 갑자기 저질러진 추행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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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hap) |
B씨가 언니에게 형부 A씨의 행위가 알려지지 않게 하려고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은 점, B씨가 잠들지 않은 기색을 보이자 A씨가 바로 행동을 멈춘 점, B씨가 A씨에게 '신경 쓰지 말고 나가라'고 말한 점 등을 보면 A씨의 행위에 폭행이나 협박이 수반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첫 번째 추행은 피해자가 모르는 상태에서 일어난 것이니 기습추행이 되지만 두 번째는 그렇게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재판부는 "B씨는 A씨를 피해 다른 방으로 옮겨 잠을 자려 했기에 뒤따라온 A씨가 자신을 계속 추행할 수 있음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A씨의 두 번째 행위가 기습적인 것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재판부의 논리대로라면 여성 피해자가 지하철에서 수상한 낌새를 보인 남성을 경계해 자리를 피했지만 결국 이 남성이 따라와 몰래 몸을 더듬었고, 이 여성이 아무 저항을 하지 않았다면 강제추행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성추행은 드물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이 현실을 외면하고 너무 기계적인 법적 해석에만 치우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될 전망이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