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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치페이 안 하는 게 데이트 성폭력의 원인? …정부 성교육 자료 ‘황당’

"이성 교제는 젊은 남녀가 미래에 대한 어떤 약속도 없이 유쾌한 시간을 즐기는 것이고, 더치페이를 하지 않는 것은 데이트 성폭력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누군가에겐 황당하게 들릴 수 있는 얘기지만 이는 정부가 만든 고등학생용 성교육 교재에 나오는 내용이다.

정부가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성교육 교재 및 학습자료의 특정 내용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일고 있다.
교육부에서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성교육 학습 자료의 일부. 이성교제는 “젊은 남녀가 미래에 대한 어떤 약속도 없이 상대방과 유쾌한 시간을 즐기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교육부에서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성교육 학습 자료의 일부. 이성교제는 “젊은 남녀가 미래에 대한 어떤 약속도 없이 상대방과 유쾌한 시간을 즐기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교육부 학생건강정보센터 학교 성교육자료실 (http://schoolhealth.kr/edugender) 에서 배포하는 고등학생용 학습자료를 보면, 이성교제는 “젊은 남녀가 미래에 대한 어떤 약속도 없이 상대방과 유쾌한 시간을 즐기는 것”이라고 정의돼 있다. 또한 청소년기의 이성 교제는 “결혼을 전제로 하는 교제가 아니며, 이성 친구일 뿐임”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교육부에서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성교육 학습 자료의 일부. “데이트 비용의 불균형”이 데이트 성폭력의 원인 중 하나로 적혀 있다.
교육부에서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성교육 학습 자료의 일부. “데이트 비용의 불균형”이 데이트 성폭력의 원인 중 하나로 적혀 있다.

또한 데이트 성폭력에 관한 챕터에는 “데이트 비용의 불균형”이 데이트 성폭력의 원인 중 하나로 적혀 있고, 이성 교제 시 지켜야 할 예절로 학생의 신분에 어울리는 단정한 복장이나 교복 입기, 비용은 각자 부담하기, 학업에 지장을 주지 않기 등을 적어놓고 있다.

중랑청소년성문화센터의 이현숙 대표는 “청소년기의 이성 친구는 ‘결혼 상대가 아닌 친구’라고 못 박은 것은 성에 관한 것을 제한하려는 시도 같은데, 미래를 준비하지 않고 순간을 즐기라는 것은 사실 굉장히 무책임한 발언일 수 있다” 며 “이성 친구든 그냥 친구든 그 시기에 관계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미래가 결혼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거다. 각 관계가 지향하는 바가 있을 텐데 상대방에 대한 책임을 정의에 포함하지 않고 그냥 순간을 즐기라는 것은 청소년들에게 오히려 혼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더치 페이를 하지 않는 것을 데이트 성폭력의 원인 중 하나로 연결 짓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무조건 동일한 금액을 지불하라고 하기 보다는, 다양한 상황과 관계 속에서 어떻게 처신할 것이라든지, 상대방과 의견 차이를 어떻게 협상해야 하는지 이런 걸 이야기 해야 한다” 며 “비용을 혼자서 지불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면 그것에 대해 상대방과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 갈등이 풀리지 않는다면 관계를 끝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데이트 비용 문제가 성폭력의 이유가 될 수는 없는 것”이러고 설명했다.

자료의 데이트 성폭행에 대한 챕터에는 또 “상대방의 권유를 거절하기 어려운 이유”라는 소제목 밑에 “상대방의 부탁이나 요청을 잘 들어주고 수락하는 것이 좋겠지만, 대인관계에서 항상 그럴 수는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써 놓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정해숙 박사는 이 특정 문구가 가장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업무를 도와달라는 등의 일반적인 관계에서의 부탁과 이성과의 관계에서 원치 않는 성관계를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며 “데이트 성폭행에 대한 챕터에 일반적인 대인관계와 이성관계의 차이점을 설명하지 않은 채 ‘상대방의 요청을 잘 들어주고 수락하는 것이 좋겠지만’이라고 쓴 것은 일단 성관계를 원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요구할 경우 웬만하면 수락하는 게 좋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 이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늘 상대방의 요구를 수용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원하지 않는지 정확히 알고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숙 대표는 또 이성 교제 시 교복이나 단정한 복장을 하라는 지침은 세부적으로 들여다 보면 성폭력 발생 원인이 피해자에게 있다고 보고 그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사회적 인식인 ‘피해자 유발론’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성폭력 피해자를 볼 때 짧은 치마를 입어서 당했다라고 한다거나 그래서 피해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인식과 관련이 있다.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청소년들이 옷을 단정하게 입어야 된다는 것이다” 며 ”정말 필요한 것은 상대방이 어떤 옷을 입고 있든 그의 동의가 없으면 그 어떤 행위도 폭력이라는 인권 교육이다”고 말했다.

한편 국회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성관련 사건으로 징계를 받은 초,중 고교생은 모두 505명으로 집계됐다. 2010년 293명이었던 징계 학생 수는 2011년 414명, 2012년 486명 등 3년간 1.3배 늘었다.

코리아 헤럴드 이다영 기자 (dy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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