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방송 역사상 최악의 방송사고로 회자될 듯"(네이버 아이디 'prau****')
"최악의 방송사고. 손오공을 본 건지 광고를 본 건지 사과없이 끝난 방송. 진짜 너무하네"('sj61****')
편성 시간에 간신히 맞춰 제작하는 한국 드라마의 '생방송 시스템'이 또다시 방송 사고를 냈다. 이번에는 아예 드라마 한 회를 마무리 짓지 못한 채 방송이 중간에 끝나버렸다. 최악의 참사다.
사고가 발생한 날이 마침 크리스마스 이브라, 시청자들은 "최악의 크리스마스 이브"가 됐다며 항의를 쏟아냈다.
지난 24일 밤 9시 방송을 시작한 tvN 주말극 '화유기'는 9시40분과 10시20분께 두 차례에 걸쳐 10~15분간 방송이 지연되는 사고를 내더니 결국 10시41분 돌연 방송을 종료해버렸다. '화유기'의 방송 사고를 수습하기 어려웠던 tvN은 결국 드라마 도중 방송을 끝내버리고, 매주 일요일 밤 10시30분 편성하는 '문제적 남자'를 예정보다 좀 늦게 틀었다.
이 같은 방송 사고는 역대 최악급이다. 역대 최악의 사고는 1999년 5월12일 밤 종교단체 신도 200여명이 MBC 주조정실로 무단 침입해 'PD수첩'('이단파문-이재록 목사편')의 방송을 중단시켜 화면이 아예 검게 뜨는 사고가 난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외부 요인이 아니라, 드라마 제작진이 자초한 일이라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한다. 준비가 안 됐으면 차라리 결방을 했어야 했는데, 무리하게 방송을 강행하다 방송 도중 끝내버리는 어이없는 참사를 냈다.
tvN은 '화유기' 방송 도중 다른 프로그램 예고편을 수차례 반복해 틀면서 '화유기' 방송 시간을 벌고자 했지만 결국 수습에 실패하자 방송을 끝내버렸다. 그 과정에서 이렇다 할 설명 없이 '방송사 내부 사정으로 방송이 지연되고 있다'는 자막만 계속해서 내보냈고, 급기야는 '방송사 내부 사정으로 종료한다'는 일방적인 고지 후에 방송을 종료했다.
◇ 방송 2회 만에 참사…'시크릿가든' '싸인' '펀치'는 마지막회에서
앞서 2011년에는 SBS TV '시크릿 가든'과 '싸인', 2015년에는 SBS TV '펀치'가 방송 사고를 냈다. 그러나 이들 드라마는 모두 마지막회에서 사고를 냈다.
'시크릿 가든'은 마지막회에서 스태프의 음성이 삽입된 콘서트 장면을 그대로 내보냈다. '싸인'은 마지막회에서 화면조정용 컬러바가 등장하더니, 엔딩 장면에서는 아예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회 전체의 편집이 매끄럽지 못했고, 후반 20여 분은 음향과 음악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펀치'는 마지막회에서 화면이 정지되거나 소리가 튀는 사고를 세 차례 냈다. 모두 시간에 쫓겨 편집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 작품 모두 높은 시청률과 화제 속에 질주하다 마지막회에서 사고를 내 그나마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었지만, 좋은 작품을 끝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하지 못해 큰 아쉬움을 안겨줬다.
지난 9월 6일 MBC TV '병원선'은 5회와 6회 사이 방송이 11분 지연되는 사고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때는 MBC의 파업이라는 요인이 있었고, 드라마 방송 도중이 아니라, 5회와 6회 사이 광고 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당시 MBC는 '병원선' 5회가 끝난 후 1분간 중간 광고격의 프리미엄CM(PCM)에 이어 다시 11분간 '재난 대비 방송'을 내보내고서야 6회를 방송할 수 있었다.
그런데 '화유기'는 불과 2회 방송 도중에 두 차례나 무려 10여 분씩을 다른 프로그램 예고편으로 때워야 하는 심각한 사고를 낸 데다, 급기야는 방송 도중 일방적으로 종료해버리는 무례함마저 범했다.
tvN은 뒤늦게 "'화유기' 2화가 후반 작업이 지연돼 방송송출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고 '자백'하면서 "입고 지연으로 방송되지 못한 화유기 2화 완성본은 추후 다시 방송할 계획"이라고 안내했다.
편성이 시청자와의 약속이라는 점에서 이같은 안내는 무책임하고 무례한 일방통행식 고지라는 지적이 빗발친다. 2회에서 대형 사고를 낼 정도라면 '화유기'의 첫 방송을 아예 뒤로 미뤘어야 했는데도, 방송을 강행하다 대형 참사를 자초해놓고도 제대로 된 사과가 없어 항의가 이어진다.
◇ '생방송 드라마'는 폭탄 돌리기…제작진 안전불감증은 계속
'생방송 드라마'란 촬영, 편집, 후반작업 등 충분한 시간을 갖고 만들어야 하는 드라마를 마치 생방송처럼 긴박하고 아슬아슬하게 내보내는 한국 드라마의 웃지 못할 상황을 설명하는 말이다. 제작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살인적인 인력 운용을 통해 하나의 드라마를 주 2회씩 60분 이상 방송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그러다 보니 배우의 부상 등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드라마는 곧바로 결방돼버린다. 과거 '아테나 : 전쟁의 여신' '바람의 화원' '넌 내게 반했어' '스파이 명월' '늑대' 등이 그러했다. '도깨비' '응답하라 1988' '슬기로운 감빵생활' 등은 제작 시간이 부족해 도중에 한주 결방을 했다.
tvN은 '화유기' 사고에 대해 "요괴라는 특수한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하면서 짧은 시간 안에 완성도를 높이고자 노력하였지만 제작진의 열정과 욕심이 본의 아니게 방송사고라는 큰 실수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방송 관계자들은 '화유기'처럼 CG가 많이 필요한 드라마를 '생방송 드라마'로 찍는 것은 무모한 일이라고 지적한다. 사전제작으로 완성하거나, 그에 준하는 정도의 충분한 제작 기간을 확보하지 않으면 방송 시간에 맞춰 제작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화유기' 사고에서 알 수 있듯, 한국 드라마 제작진의 안전불감증은 계속되고 있다. 지금까지 수십년 '생방송 드라마'를 만들어왔고, 몇몇 사고가 있었지만 대체로 방송이 잘 됐던 것에 대한 잘못된 자신감과 믿음이 빚어내는 결과다.
방송가에서는 최소 드라마 전체의 절반은 제작이 완료된 후 방송을 시작하는 '반(半) 사전제작'이 이같은 '폭탄 돌리기'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십수 년째 얘기하고 있다. 실제로 '태양의 후예'와 같은 작품은 재난 장면, 해외 로케이션 등을 소화하기 위해 사전제작을 통해 완성됐고,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드라마는 '생방송 시스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방송사 편성과 캐스팅, 협찬, 시청률 등 '생방송 드라마'를 지탱하는 이유는 가지가지다.
'화유기' 같은 사고가 얼마나 더 터져야 '생방송 드라마'를 끝낼 것인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