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반성하고 성찰하고, 절대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계속 노력해 나가야겠지요."
4일 늦은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영화관을 현직 경찰관들이 하나둘씩 채웠다. 민갑룡 경찰청 차장 등 경찰청 소속 경찰관 200여명은 이날 상영관 하나를 빌려 고(故) 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과 6월항쟁을 다룬 영화 '1987'을 단체 관람했다.
박종철씨 사건은 경찰에게는 매우 부끄러운 과오다.
1987년 1월 치안본부(현 경찰청)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받던 서울대생 박종철씨가 고문 끝에 사망했다.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거짓말까지 내놓으며 사건을 단순 쇼크사로 은폐·조작하려 했다.
당시 언론사 기자, 부검의, 검사, 교도관, 감옥에 갇힌 민주화 인사, 종교인 등 사회 각계 구성원들의 노력으로 사건 진상이 폭로됐고, 은폐와 조작에 가담한 강민창 당시 치안본부장과 고문 수사관 등 9명이 구속됐다.
앞서 이철성 경찰청장은 영화 개봉 직후인 지난해 말 박상기 법무부 장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문무일 검찰총장과 동반 관람했다. 이를 계기로 경찰청 지휘부와 다른 직원들도 관람에 동참하게 됐다.
영화 시작 전까지 분위기는 여느 영화관과 별로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박종철씨 사망 장면과 함께 영화가 시작되자 객석 공기는 이내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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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
치안본부장이 언론 앞에서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며 사망 원인을 허위 공표하는 장면에서는 어이없다는 듯 '큭' 하는 실소가 객석에서 들렸다.
굳은 표정으로 스크린을 응시하던 민갑룡 차장은 임진강에 뿌려진 박종철씨 유해가 얼어붙은 강에 달라붙자 "와 못 가노. 종철아. 잘 가그라. 아부지는 아무 할말이 없데이"라고 박씨 부친이 절규하는 장면에서 슬쩍 눈가를 훔쳤다.
영화 종반 배경인 1987년 6월 연세대 앞에서 시위하던 고 이한열 열사가 경찰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직격당해 쓰러지는 장면이 나오자 객석 일부에서는 훌쩍이는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한 경찰관은 연신 눈가를 닦아댔다.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모두 올라간 뒤 조명이 켜졌지만, 영화관 안은 침묵으로 고요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이어 자리에서 일어나 상영관 밖으로 나가는 경찰관들의 표정은 모두 굳어 있었고, 일부는 긴 한숨을 쉬었다.
박종철 열사 사망 당시 경찰대 3학년 겨울방학 중이었고, 6월 항쟁 때는 4학년이었다는 민 차장은 "주말에 외출해 친구들을 만나면 경찰대생이라는 이유로 늘 공격받았다"며 "내가 왜 공격받아야 하는지, 우리가 졸업하고 나가서 해야 하는 경찰이 욕을 먹어야 하는 존재인지 고민하며 안타까웠다"고 회고했다.
그는 "역사를 기억하지 않으면 같은 역사가 되풀이된다.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고, 우리 후배들이 이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한다"며 "그러기 위해 개혁이든 변화든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 차장은 박종철 열사가 숨진 옛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센터)을 시민들에게 넘겨주라는 요구가 최근 나온 데 대해 "시민들과 더 가까운 공간으로 만들 방법이 있는지 논의해보겠다"고 밝혔다.
영화를 본 한 경찰관은 "1987년 당시 나는 의무경찰로 시위를 막고 있었는데 동생은 이한열 열사 장례 때 상여를 멨다고 한다"며 "동생은 아직도 마음이 아파 영화를 못 보겠다고 하더라. 나도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한 국장급 경찰관은 "영화가 끝난 뒤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조용했던 것을 보면 우리가 영화를 어떻게 느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오랫동안 곱씹어봐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