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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강간죄' 무엇이 문제인가?

이달 초 광주고법은 군대 내 기강을 앞세워 최소 4명의 후임병에게 20차례에 걸쳐 성추행하고 구강성교까지 강요한 해병대원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세계보건기구와 국제 형사 재판소는 강간을 강제로 이뤄진 구강성교, 항문성교를 포함한 “성별에 구분없이 강요된 모든 성적 삽입행위”로 정의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해병대원 A(21)씨가 저지른 범죄는 ‘강간’에 해당된다. 


그러나 A씨가 기소된 명목은 ‘강간’죄보다 처벌 강도가 낮은 ‘유사강간.’ 강간을 ‘이성 성기 간 결합’이라는 특정한 행위에만 국한하고 있는 한국의 현행법 상 동성간의 강간은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성별의 구분없이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행한 다른 종류의 성적 삽입행위 역시 ‘강간죄’를 적용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강요된 구강성교, 항문성교, 성기를 제외한 신체 일부 또는 도구 등을 신체 내부에 넣는 행위는 모두 강간죄보다 법정형 수위가 낮은 ‘유사강간죄’에 해당한다.

전문가들은 강간죄와 유사강간죄를 구분한 뒤 처벌 수위를 다르게 명시해 놓은 현행법에 문제가 있다고 목소리를 모은다. 특히 법의 보호법익인 개인의 성적자기결정권과 불일치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강간죄의 법정형은 최소 징역 3년, 유사강간죄는 징역 2년이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강간죄는 최소 징역 7년, 유사강간죄의 법정형은 최소 징역 5년이다. 군 형법 역시 강간죄와 유사강간죄를 구분하고 강간죄의 처벌 수위를 더 높게 책정해 놓고 있다. 따라서 남성 성폭행 피해자는 가해자 역시 남성일 경우 그 어떤 경우에도 ‘강간죄’를 적용해 상대방을 처벌할 수 없다.

성폭행 피해자들을 다수 변호해온 천정아 변호사는 “‘유사강간’을 당한 피해자가 ‘강간’을 당한 피해자보다 정신적, 신체적 피해가 적다고 보기 어려운데도 ‘유사강간’을 경하게 처벌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최종 선고는 판사의 몫이지만, 법정형 자체가 조금 낮게 규정이 돼 있으면 선고형 역시 낮아질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유사강간죄’가 신설된 것은 2013년으로, 형법 제정 이래 ‘부녀’로 제한돼 있던 강간 피해자의 범위가 남성에게까지 확대된 것과 더불어 꽤 최근의 일이다. 1995년까지 강간죄는 형법의 ‘정조에 관한 죄’로 분류되었다가 같은 해‘강간과 추행의 죄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의 자유에 대한 죄)’로 개정됐다.

그러나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장다혜 박사와 공익인권법재단의 김정혜 연구원은 현행법의 보호법익이 여전히 ‘정조’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과 장 박사는 “과거에 강간죄는 여성 개인에 대한 피해라기 보다는 여성 가문에 대한 침해, 아버지에 대한 침해, 종속권의 문제였고, 혈통의 순수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여성의 정조가 필요했다” 고 설명하며, “만약 정조가 현행법의 보호법익이라면, 성폭력 중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유일한 폭력인 ‘이성 성기 간 결합’을 가장 중하게 처벌하는 게 맞다. 그러나 지금 명시된대로 ‘성적 자기결정권’이 보호법익이라면, 모든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를 균등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강간죄’와 ‘유사강간죄’가 구분된 현행법에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집단은 남성 군 성폭행 피해자라는 의견이 많다. 이달 판결난 해병대원 사건에 앞서 작년 11월엔 동성 후임을 3차례 넘게 성폭행한 혐의로 26세 A중사가 체포됐다. 작년 4월 선임병과 초급 간부에게 지속적으로 폭행당해 사망한 윤 모 일병 역시 거듭되는 성추행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군 인권센터에 따르면, 2012년 하반기부터 2013년 연말까지 470건의 군 성폭행 피해 사례가 접수되었지만, 기소율은 39.5 %에 그쳤다.

배복주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장은 “여성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 ‘유사강간’의 피해만 입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강간’과 ‘유사강간’의 피해를 동시에 입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며 “이 경우 가해자는 ‘강간죄’와 ‘유사강간죄’에 대한 처벌을 동시에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현행법 상 남성을 성폭행한 가해자는 그 어떤 경우에도 ‘강간죄’로 기소될 수는 없다. 강간에 대한 법적 정의가 확대되어야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천 변호사 역시 “남성 성폭행 피해자는 신고를 했다가도 수치심 때문에 중간에 취하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일은 여자들한테만 일어나는 줄 알았는데 남자인 나한테 일어났다는 게 창피하다’고 말하는 피해자도 봤다. 경찰 앞이나 법원에서 진술하는 게 부담스러워서 취하하기도 한다‘” 며 “강간에 대한 법적 정의를 확대하거나 ’유사강간‘에 대한 처벌 수준을 ’강간‘과 같은 수준으로 높이는 입법정책이 검토되어야 할 것 같다. 국회에서 할 문제”라고 말했다.

코리아 헤럴드 이다영기자 (dy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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