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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성폭행 피해자에 공개서한…2차 피해 논란

경찰이 성폭행을 당해 경찰 조사를 받은 외국인 여성의 진술에 반박하는 서한을 페이스북에 게시해 2차 피해를 일으켰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일본에서 영어강사로 일하는 호주 출신 에어드리 매트너씨(25)에 따르면 그는 지난해 9월 휴가차 한국에 왔다가 성폭행을 당했다. 


그 후 그녀는 온라인 기금모금 사이트 ‘고펀드미’(GoFundMe)에 한국 경찰이 모욕적인 말투로 질문하고, DNA 채취에 실패하는 등 무성의한 조사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이 언론에 알려지자 경찰은 지난 1일 매트너씨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페이스북에 게시했다. 경찰은 그동안 언론에서 다뤄진 피해자의 진술이 수사 내용과 다른 부분이 있다며 그녀의 DNA 검사 결과, 수사 진행 사항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한국어와 영어로 게재했다. 


경찰은 그녀의 고펀드미 켐페인 페이지에 이 게시 글의 링크까지 공유하며 경찰 측의 해명 글을 홍보했다.

이 게시글에서 경찰은 사건발생 즉시 지정 병원으로 피해자를 안내해 증거물을 채취하고, 용의자의 DNA를 확보했으며, 그녀의 혈액과 소변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한 결과 약물 반응은 나타나지 않았다 밝혔다. 또 통역인과 신뢰할만한 사람들 조사 과정 중 대동하게 했고, 그 과정에서 모욕적인 질문은 없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매트너씨는 코리아헤럴드와의 인터뷰에서 “진짜 충격받았고, 화가 났고, 내가 안전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경찰은 페이스북에서 나를 공개적으로 괴롭힌 것”이라 말했다.

그녀는 경찰의 행위가 “나에게 직접적으로 이메일을 보내거나 대사관을 통하면 될 것인데, 경찰은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적으로 괴롭히는 방법을 택한 것”이라며 “내 주장에 반박했지만 그 반박을 뒷받침하는 어떠한 증거도 제공하지 않았다. 아직 개인적으로 DNA 검사 결과나 조사 과정에 대해 통지받은 게 없다”고 말했다.

매트너씨는 사건 이후 이메일을 통해 경찰에게 몇 번이고 수사 진척상황에 대한 문의와 우려 사항을 전달했으나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경찰이 언론을 통해 그녀의 진술을 반박하고, 페이스북 게시글을 보고 나서야 자신의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를 알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경찰은 게시글에서 “피해 진술을 마치고 곧바로 해외로 출국한 관계로 대사관을 통해 연락을 취할 수밖에 없었으며 통역상의 문제로 요청한 진술조서 등은 팩스로 보내고 5회 이상 영사관과 통화하며 수사 진행사항을 통지했다”고 말했다. 

이 게시글을 본 국내외의 페이스북 이용자들은 댓글을 통해 경찰이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를 망각하고 평판을 지키려고 피해자를 공개적으로 망신시켰다며 반발했다. 이 게시글은 6일 기준 54회 공유됐고, 65개의 댓글이 달렸다.

페이스북 이용자 디미트리 라우소풀로스씨는 이 게시글에 대한 댓글에서 “뭐라고요? 경찰은 임무를 다함으로써 평판을 지킬 생각을 해야지, 경찰이 잘못된 정보라고 주장하는 것을 바로 잡는답시고 이렇게 공개서한을 쓰지 마세요. 경찰은 국민을 위한 기관이지, 이미지를 걱정해야 하는 정치기관이 아닙니다. 이런 공개서한을 보낸다는 것 자체가 경찰, 대한민국을 우스꽝스럽게 보이게 하는군요”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이용자 박설희씨는 “이 사건의 처리에 대해서는 아무리 피해자여성분이 잘못된 정보를 올렸었다고 할지라도(혹여라도) 용산경찰은 이런 식으로 피해자의 신상 전부를 공개하여 공유하는 것과 단지 본인들 이미지를 위해서 피해자의 주장에 반박하며 스스로 변호하는 글을 쓴 것을 창피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번역조차 엉망으로 된 이 글 우리나라 사시는 외국인분들에게 보이는 것도 수치인 것을 아시고 공정하게 조속히 범인을 잡아 해결하시는 게 경찰이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밝혔다.

본지는 또한 글이 올라온 지난 1일 이후, 경찰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이 담긴 수십 개의 댓글이 사라졌음을 확인했다. 경찰은 “글을 게시한 목적과 부합하지 않는 댓글들이 본질을 흐리는 것이 걱정되어” 경찰만 댓글들을 볼 수 있게 “숨겨놓았다”고 해명했다.

댓글이 사라지기 전 스크린샷으로 저장된 숨겨진 혹은 삭제된 댓글 중 알리 애플씨는 ““수사 기관이라는 곳에서 피해자의 삶과 건강보다 자기네들 평판을 더 걱정하는 것입니까…”고 말했다. 신나라씨도 “왜 이 글을 페북에 올려야 했나요. Gofundme에 댓글에 용산경찰관이라고 여기 주소 써놓고 읽어달라 올려놓은 것 봤습니다. 직접 보내야 하는 글 아닌가요?”라고 말했다.

데니스 김씨는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한 희생자의 신상정보 및 사건 사항을 공개된 SNS에 게시한 것인데 이는 삭제하는 게 올바른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스텔 디엔느씨는 “체면 살리기 위한 멋진 전략이네요. 희생자를 탓하면서 말이죠. 안타깝게도 이게 한국 경찰의 슬픈 현실이네요. 외국인은 어디서 왔든 경찰력을 전혀 투입할 필요 없는 2등국민”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용산경찰서 관계자는 “피해사실 전반적인 내용은 피해자가 온라인에 먼저 올린 것이다. 우리가 개인 신상정보를 노출한 게 아니다. 경찰은 본인이 알지 못한다고 하는 부분, 경찰 수사가 미진했고, 모욕적인 언사가 있었다는 부분에서 반론만 제기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관계자는 “우리가 업무를 잘못 처리한 것으로 오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사실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었다”며 “경찰이 수사한 내용과 전혀 다른,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경찰의 명예를 좀 훼손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답변으로 동일한 방식으로 해명한 것일 뿐” 이라고 말했다.

관계자는 대사관 측에 제대로 수사 진척상황을 통지했지만, 그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전달된 것 같지 않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페이스북이라는 공간에서 공개적으로 성범죄 피해자를 반박하는 서한을 보낸 것이 2차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의 김보화 책임연구원은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피해자의 동의 구하지 않고, 개인사를 올리는 건 인권침해일 뿐 아니라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다”라며 이를 “전형적인 2차 피해의 한가지 유형”이라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또 “국가뿐 아니라 사건 처리하고 해결하는 기관에서는 당연히 피해자를 보호하고, 피해자의 비밀을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경찰들의 이러한 방식은 피해자의 치유를 돕기는커녕 추가적인 피해를 발생시키는 행동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2차 성폭력의 피해를 막으려고 1994년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됐다. 피해자 보호를 위한 대책에는 피해자 불이익처분 금지, 수사·재판공무원 피해자 사생활 비밀 누설 금지, 일반 국민의 피해자 인적 사항 공개금지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법안과 제도는 체계적이지만 실질적으로 제대로 실행되지 않고,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통념 때문에 2차 성폭력 피해를 막기에는 사회실효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여성의 전화 성폭력상담소 최희진 소장은 “호주 피해자 분과 비슷한 사례가 우리나라에도 많다”며 “성폭력 수사가 이뤄질 때 증거가 부족한 경우가 많아서 피해자의 진술을 의심하는 형태로 질문한다. 또 재판 과정에서도 피해자가 증인 자격으로 피해를 계속 입증해야 하는 시스템인데 피해자들을 이를 무척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또 “성범죄 피해자를 대하는 사법기관, 수사기관의 전문성, 감수성이 부족하다”며 “제도는 잘 되어 있는데, 일단 만들어 놓고 제대로 실행하고 있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감사와 동행의 고지운 변호사는 “피해자의 실명과 피해자도 몰랐던 수사 결과를 페이스북 올리는 것이 적법한 행위인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며 “공권력이 개인에 대한 피해를 충분히 생각해본 것인가 의심이 드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코리아헤럴드 옥현주 기자 laeticia.oc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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