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10년간 한국에 거주해온 영국인 제시카 우드 (가명) 씨는 지난 2009년 영국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첫딸을 낳았다. 아이는 첫돌을 넘긴지 얼마 되지않아 병원에서 뇌성마비 판정을 받았지만, 만 6세가 된 지금도 거주국인 한국에서는 법적으로 ‘장애인’이 아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부모가 모두 외국인이고, 본인도 한국국적 소지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드 씨의 자녀는 법적으로 장애인이 아니기 때문에 늘상 휠체어를 사용함에도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을 이용할 수 없다. 약 9개월에서 12개월에 한번씩 교체해야 하는 뇌성마비 아동용 발보조기 (약 50만원) 에 대한 지원도 받을 수 없다. 또한 장애인 아동을 위한 특수 학교에 아이를 등록시킬 때도, 자녀가 장애인임을 ‘증명’하기 위해 수십장의 서류를 제출해야 했다.
인권 전문가들은 단순히 부모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국내에 거주하는 장애아동이 장애인 등록을 할 수 없다면, 지난 1990년 한국이 서명한 유엔아동권리협약에 위반된다고 지적했다.
협약의 제 23조는 “당사국은 장애아동에게 특별한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며, 아동의 여건과 부모나 다른 아동양육자의 여건에 적합한 지원을 활용 가능한 재원의 범위 내에서, 이를 받을만한 아동과 그의 양육책임자에게 제공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고 적고 있으며, “제공되는 지원은 부모나 다른 양육자의 재정형편을 고려하여 가능한 한 무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협약의 제2조는 “당사국은 자국의 관할권 내에서 아동 또는 그의 부모나 법적 후견인의 인종, 성별, 언어,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기타의 신분에 관계없이 그리고 어떠한 종류의 차별없이 이 협약에 규정된 권리를 존중하고, 각 아동에게 보장하여야 한다”고 적고 있다. 즉, 부모의 국적과 상관없이 국내 거주하는 장애아동에게는 사회적 지원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
김종철 인권변호사는 “아동권리협약 뿐만 아니라 장애인권리협약 5조에 따라서도 장애인 아동을 체류자격에 따라 의료 서비스를 포함한 기본적인 사회적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한다면 관련 협약 위반”이라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장애인 등록을 할 수 있는 비자 소지자들은 다음과 같다. 재외동포 (F-4), 영주권자 (F-5), 결혼이민자 (F-6) 그리고 외국인 거주자 (F-2)다. 영주권자인 F-5 비자 소지자들은 체류기간 연장없이 영구 거주가 가능하다. 그 전 단계인 F-2비자 소지자들은 1년-3년 범위 내에서 체류 연장을 해야 한다.
우드 씨 역시 처음에는 취업비자 (E-2)로 한국에 거주했지만, 자녀의 장애인 등록을 위해 지난한 한국어 교육을 이수한 뒤 F-2비자를 취득했다. 그러나 비자 취득 이후에야 부모가 모두 외국국적인 아이들은 어떤 경우에도 한국에서 장애인 등록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F-2비자 소지자의 아이들은 거주자 동반비자인 F-3비자를 받게 된다. F-3비자 소지자들은 F-2비자 소지자와는 달리 현행법상 한국에서 장애인 등록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드 씨는 “아이들은 어른과 달리 F-2비자를 스스로 신청할 수가 없게 돼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우드 씨가 자녀를 장애인으로 등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영주권인 F-5 비자를 받는 것 뿐이다. 그러나 한국인과 법적으로 혼인한 결혼이민자가 아닌 외국인이 한국 영주권을 취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드 씨는 “F-5비자 심사 기준은 ‘외국인 지원자가 영주권 취득시 한국에 얼마나 이득이 될 것인가’인 것으로 알고 있다” 며 “여러 복지 지원이 필요한 장애아동을 둔 외국인 부부들이 영주권을 받는 것은 사실상 매우 어렵다”고 전했다.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과 관계자는 “관련 법령을 좀 더 알아봐야 이 문제에 대해 의견표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코리아 헤럴드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입장이나 의견을 듣기 위해 여러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담당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코리아 헤럴드 이다영 (Claire Lee)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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