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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의 그늘…쓰레기와 함께 사는 '저장강박증'

"옆집에 여자가 혼자 사는데 도대체 뭘 하는지 썩은 냄새가 나서 참을 수가 없어요."

지난달 21일, 경기 고양경찰서 풍사파출소에 한 통의 신고 전화가 걸려왔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현장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10평 남짓한 아파트에 발 디딜 틈 없이 온갖 쓰레기들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 사는 A(45ㆍ여)씨는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로, 이웃과 별 교류 없이 홀로 지내왔다. 경찰은 지역 주민센터와 함께 A씨의 심리 상태를 상담하고 설득해 지난 5일에야 집안의 쓰레기를 치웠다.

(123rf)
(123rf)

이처럼 집안에 쓰레기를 쌓아놓고 사는 우리 이웃은 A씨 뿐만 아니다.

지난 6월 전북 군산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은 절도 혐의를 받는 피의자의 집에 들어갔다가 기겁했다.

32평 방에는 역시 담배꽁초와 음식물 쓰레기 등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경찰관이 청소해 주겠다고 해도 완강히 거부하던 피의자 B(57)씨는 수년 전 교통사고 후유증과 가족과의 이별로 저장강박증을 앓고 있었다.

저장강박증은 어떤 물건이든지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계속 모으고, 버리면 불편함을 느끼는 장애다. 심할 경우 치료가 필요한 행동장애로 이어지는 개인적 질병의 일종으로, 사회적 빈곤이나 소외와 밀접하다고 한다.

사람은 사회적으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만족감과 자존감을 느끼지만 독거노인 등 소외된 계층 일부는 인간적 유대감을 일상에서 찾지 못한다. 이러한 유대감 결핍이 물건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지고 심해지면 쓰레기와 함께 사는 저장강박증으로 이어진다.

저장강박증은 쓰레기가 쌓이기 시작해 악취가 나고 벌레가 들끓으며 결국 이웃에도 큰 피해를 준다는 점에서 개인 차원의 문제를 넘어선다. 하지만 집 안에 있는 쓰레기 역시 개인의 재산이고, 당사자가 버리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지자체 공무원들은 이를 치우기 위해 매번 며칠간 설득에 진땀을 빼야 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문제가 풀리는 건 아니다. 어렵게 설득해 쓰레기를 치워도 쓰레기는 얼마 후 다시 집안에 가득 찬다.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서 혼자 사는 장모(90) 할머니의 경우가 한 예다.

2013년 10월 장씨 할머니의 집에서 수십 년 간 모은 쓰레기가 약 100t이나 나왔다. 당시 할머니의 사연이 방송을 통해 소개되면서 지자체 관계자와 자원봉사자들이 힘을 합쳐 100t이나 되는 쓰레기를 치웠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올해 1월 장씨 할머니의 30㎡ 남짓 방에서 또 20t의 쓰레기가 나온 것이다.

동 주민센터 직원은 "할머니가 150㎝도 안 되는 작은 키임에도 집 안은 할머니가 겨우 누울 공간밖에 없었다"며 "각종 벌레와 악취 등 위생상태가 극히 불량해 보건소에 요청해 별도의 소독을 해야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장씨 할머니는 독거노인으로, 유모차를 끌고 나와 인근 무료급식소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유일한 사회활동이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소외계층에 대한 경제적 지원 외에 심리적 지원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인제대학교 상담심리치료학과 김명찬 교수는 25일 "저장강박증은 치료가 필요한 정신병의 일종이지만, 멀쩡하던 사람도 여러 이유로 소외를 겪으면 발병할 수 있는 사회적 관계에서 오는 병"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저장강박증의 경우 일시적으로 물건을 치워도 치료가 없으면 대부분 쓰레기를 다시 모으게 된다"며 "사회적으로 물질적 지원 이외에 상담사나 이웃과 소통하며 유대감,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정서적 복지 시스템을 마련해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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