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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부조금 '내가 준만큼 돌려받을 수 있나'

서울 옥수동에 사는 직장인 박 모 씨는 이번 주말에만 후배, 친구 등의 결혼식 네 건에 축의금으로 30만 원을 지출했다.

박 씨는 "빠듯한 봉급생활자에게 이 정도의 지출액은 매우 부담스럽다"면서 "경조사비 지출 때문에 실제로 다른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경기 불황에 월급 등 소득은 늘지 않는데, 끊이지 않는 청첩장과 부고에 경조사비 부담만 커지면서 말 못할 '속앓이'를 하는 것이다.

게다가 본인이 제공한 만큼 경조사비를 돌려받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진심으로 같이 기뻐하고 슬퍼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한 달에 적게는 수 십만 원, 많게는 100만 원이 넘는 경조사비는 대부분의 가계에 부담된다.

경기도 고양시 행신동에 사는 정 모 씨는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10건의 친구, 지인 부모님 상가에 다녀왔다.

겨울철 노인들의 상이 몰리는 것을 탓할 수 없지만 무려 2개월 사이 70만~80만 원의 지출이 생기니 당황스러운 게 사실이다.

정 씨는 "경조사비 부담이 커지니까 예전에 어머님이 경조사비 장부를 만들어 철저히 받은 만큼 돌려주는 방식으로 관리하시던 생각이 났다"고 말했다.

사회적 지위가 높고 수입이 많아도, 그만큼 경조사비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니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국내 한 대기업의 상무 이 모 씨는 한 달 평균 개인 명의로 지출하는 경조사비가 100만 원에 달한다. 1년이면 무려 1천200만원이 경조사비로 나간다.

이 씨는 "직급이 올라갈수록 회사 안팎으로 챙겨야 할 사람이 늘어나 어느 순간 경조사비가 월 100만 원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최근 축의·조의금은 보통 5만~10만 원 선이지만, 지위와 소득 수준이 높지 않아도 매우 가까운 사이에는 수십만 원의 지출을 각오해야 한다.

광명시에 사는 30대 초반 직장인 강 모 씨는 "제일 친한 친구들끼리 서로 결혼할 때 TV나 냉장고 등 필요한 혼수를 사라고 150만 원씩 모은다"며 "친한 친구에게 해주는 것이어서 무리해도 기분은 좋지만, 당장 주머니 사정이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부담이 커지다 보니 축의·조의금의 본질이 축하와 위로의 마음보다 준 만큼 돌려받는 '거래'가 되고 있다.

서울 서초동에 사는 직장인 최 모 씨는 자신의 경조사 때에 받은 금액을 꼬박꼬박 적어놓고 상대방의 경조사가 생기면 똑같은 금액을 맞춰서 준다. 경조사비는 받은 만큼 주는 '정확한 거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 씨에게 최근에 곤란한 일이 생겼다. 지인의 결혼식에 최 씨는 자신이 받은 대로 30만 원을 내려고 했지만 그가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자였기 때문이다. 결국, 최 씨는 자신의 이름, 남편 이름, 아이 이름으로 각 10만 원씩 세 개의 봉투를 냈다.

서울 본동에 사는 직장인 김 모 씨는 봄이 되면 동료들의 결혼식에 한 달 수 십만원을 쓰는데, 약간 억울한 생각이 든다.

그는 "결혼과 출산까지 마치고 이 회사에 들어온 나로서는 경조사비를 받을 일이 거의 없는데, 동료들은 입사 후 결혼과 돌잔치 등을 하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나만 지출한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많은 한국인이 경조사비를 내면서 낸 만큼 돌려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계산한다.

대형 법률회사에 근무하는 변호사 정 모 씨도 "별로 친하지 않은 회사 사람들이 청첩장을 돌리면 결혼식에는 안 가고 축의금만 10만 원씩 낸다"며 "같은 회사에 있을 뿐 개인적 관계가 오래 지속될 사람들이 아니어서 어차피 돌려받지도 못할 돈"이라며 씁쓸해했다.

독신주의자들은 평생 남의 결혼식에 축의금을 내지만 받을 일이 없다. 이 때문에 요즘엔 독신을 선언하며 그동안 낸 축의금을 돌려받는 '비혼식'이라는 이벤트까지 생겨났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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