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감정의 골이 깊다지만 멀쩡한 도로를 끊고, 수로까지 걷어내는 게 말이 됩니까.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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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
한가롭던 농촌인 충북 영동군 양산면 호탄리 마을이 이웃간 토지 분쟁으로 뒤숭숭하다.
중장비가 투입돼 멀쩡하던 농로를 걷어내고, 산골짜기서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내던 수로까지 파내 못 쓰게 만들었다.
주민들은 "당장 코앞에 닥친 장마철 마을 전체가 물바다 되는 게 아니냐"며 불안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 마을에 흉흉한 사건이 벌어진 것은 지난달 20일. A씨가 토지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자신의 밭 위로 난 폭 2.5m의 콘크리트 도로를 걷어낸 것이다.
A씨는 지난해 말 법원에 "농로로 사용되는 땅을 돌려달라"는 토지 인도 소송을 내 승소한 바 있다.
주민들은 A씨가 재판에서 이기자마자 강제 집행 신청한 뒤 곧바로 중장비를 들이댔고, 이 과정에서 농로와 그 옆에 붙어있던 수로 등이 파헤쳐졌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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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헤쳐진 도로 (사진=연합뉴스) |
절단된 도로는 큰길에서 B씨의 축사로 이어지는 유일한 통행로다. 평소 사료나 볏짚 등을 실은 차량이 이 도로를 지나다녔다. 이 때문에 도로를 걷어낸 A씨의 행동이 누구를 겨냥한 것인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도로가 없어진 뒤 B씨는 사흘마다 손수레를 이용해 사료 등을 옮겨 나르는 실정이다. 500마리가 넘는 한우를 사육하는 곳이어서 운반하는 사료량이 어마어마하다보니 보통 고역이 아니다.
두 사람의 다툼은 어제오늘 시작된 게 아니다. 10여년 전 농로 문제로 한 차례 충돌한 뒤 시간이 갈수록 골이 깊어져 왔다.
몇 해 전에는 A씨의 밭에 심어진 감나무 수십 그루가 B씨 가족에 의해 베어지고, B씨 축사에 원인 모를 불이 나는 일까지 발생했다.
꺼림칙한 일이 일어날 때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의심했고, 같은 마을 이웃이면서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고소 고발을 주고받으면서 갈등의 골을 키웠다.
그러던 중 2014년 B씨는 자신의 밭을 무단점용한 농로와 수로 때문에 홍수 피해 등이 우려된다며 이를 걷어내 달라는 소송을 영동군청을 상대로 내 승소한다. 이 농로는 A씨 밭으로 이어져 있어 그에게 고통을 주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였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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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 채워진 수로 (사진=연합뉴스) |
이 판결에 따라 새로운 수로 설치 문제가 마을의 현안으로 떠올랐는데,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이 다시 대립했고 발끈한 A씨는 결국 영동군청을 상대로 B씨의 축사로 이어지는 길에 대한 토지 인도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A씨는 "B씨의 집요한 해코지를 더는 참을 수 없어 나도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했다"며 "법원 판결을 받아 정당하게 재산권을 행사한 만큼 B씨가 불편을 겪든 말든 내가 알 바 아니다"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상대인 B씨의 아들은 "어머니께서 축사로 향한 수로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소송을 냈지만, 실제로 도로를 걷어내는 등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며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받아쳤다.
두 사람의 모진 싸움을 지켜봐야 하는 마을 주민들과 행정당국은 뾰족한 해결 방법이 없어 속만 태우고 있다.
주민 C씨는 "양측이 서로에게 해를 입히려고 제 살 깎는 소모전을 되풀이하고 있다"며 "둘 사이 감정싸움으로 수로가 막히는 바람에 애꿎은 마을이 물난리를 겪을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푸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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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소유권 주장하는 문구 (사진=연합뉴스) |
영동군은 사유재산을 둘러싼 싸움이어서 개입할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군 관계자는 "그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중재를 시도했지만, 양측이 한 치 양보 없이 대립하면서 얽히고설킨 감정의 실타래를 풀지 못하고 있다"며 "감정의 골이 워낙 깊어 쉽게 해결되지 않을 싸움"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그는 "사유재산이기는 하지만 수로를 틀어막는 행동은 애꿎은 이웃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만큼 큰비가 오기 전 물길이라도 터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