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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관님' 대신 '마냐'…청와대에 접목된 '닉 문화'

"루피, 루피 거기 잠깐만 있어봐요"

청와대가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 오픈하우스 행사를 한 지난 8월 18일. 여민3관 복도를 지나던 몇몇 출입기자들은 '루피'를 찾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좁은 복도를 뛰어가며 루피를 부른 인물은 정혜승 뉴미디어비서관이었고, 루피는 뉴미디어비서관실 직원의 '닉'(Nick·닉네임의 줄임말)이었다.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실 산하 뉴미디어비서관실 직원들은 직급과 존칭을 사용하지 않고 닉으로 서로를 호칭한다.

1급 공무원인 정혜승 비서관의 닉은 '마냐'다. 지금은 모 신문사의 부장으로 있는 후배가 '마녀'를 변형해 붙여준 별명이라고 한다. 정 비서관은 2000년부터 마냐라는 닉으로 블로그 활동을 해왔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앞서 정 비서관이 다급하게 찾은 직원 '루피'는 일본 만화 '원피스'의 주인공 이름을 자신의 닉으로 정했다.

뉴미디어비서관실에는 마냐와 루피 외에도 '테리우스', '쭈니' '또치' 등이 근무하고 있다.

'닉 문화'는 카카오 부사장 출신인 정혜승 비서관이 도입했다. 카카오는 설립 초기부터 직급과 존칭 대신 닉을 사용하고 있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의 닉은 '브라이언', 임지훈 대표의 닉은 '지미'다.

정 비서관은 브라이언·지미와도 편안하게 토론할 수 있는 '닉 문화'를 청와대에 접목했다. 직급에서 오는 권위를 포기하는 대신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의 장점을 취한 것이다.

정 비서관은 "우리 방 직원들이 저를 '비서관님'하고 부르는 순간, 제 결정에 반대하거나 다른 의견을 내고, 자유로운 토론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수평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은 막내도 보스와 벽 없이 토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냐·테리우스·루피·쭈니·또치 등의 기본 임무는 문재인 정부의 디지털 소통이다.

취임 100일을 맞은 문 대통령의 소소한 인터뷰 영상을 올리는가 하면, 에너지 정책 전환과 관련한 카드 뉴스를 만들고, 휴대전화로 문 대통령의 뉴욕 방문을 라이브 중계하기도 했다.

청와대 공식 홈페이지 외에도 뉴미디어비서관실에서 관리하는 청와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계정만 페이스북·트위터·유튜브·인스타그램·카카오톡 플러스 등 5개에 달한다.

뉴미디어비서관실은 각 SNS의 특성에 맞춰 차별화된 관리를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여성 이용자가 많은 인스타그램 계정은 막내 직원이 20대 여성의 감각을 살려 관리한다.

대부분의 업무가 과거 청와대의 이름으로는 해보지 않은 새로운 시도인 만큼 청와대 내 어느 부서보다 자유롭고 창의적일 필요가 있다.

정 비서관은 "우리 방 누구든 아이디어를 내고 추진해보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라며 "직급의 권위는 없는 게 더 좋다"고 말했다.

그에게 "닉 문화가 청와대 전체로 확산하길 바라는가"라고 묻자, 예상외로 "아니오"라는 답이 돌아왔다.

정 비서관은 "청와대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에 퍼지길 바란다"며 "권위 대신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 이건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의 바람대로 닉 문화가 청와대를 넘어 우리 사회 전체에 퍼질 수 있을지에 대해 그의 직속상사인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의 의견을 물었다. 네이버 부사장 출신인 윤 수석 역시 네이버 근무 당시 '동창'(東窓)이라는 닉을 사용했다.

아침 햇살을 가장 먼저 받는 창이라는 의미와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창구라는 의미를 담은 닉이라고 한다.

윤 수석은 뉴미디어비서관실의 닉 문화를 새로운 실험으로 보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윤 수석은 "국민과 직접 마주하고 소통해야 하는 우리 수석실 입장에서 비서관실 내부의 수평적 관계는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려는 노력의 하나로 볼 수 있다"며 "하나의 비서관실에서 하는 것이지만 의미 있는 실험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소통수석실 전체로 닉 문화를 확산할 의향이 없는지 묻자, 웃음을 보이며 "뉴미디어비서관실의 실험이 성공하는지를 좀 보고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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