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A양에게 그날 '일'은 영원히 지우고 싶은 기억이다. 악몽이 이대로 끝나기를 바랐다.
의붓아버지로부터 추행을 당했지만, 친어머니는 '믿고 기댈 언덕'이 아니었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어머니 때문에 2차 피해를 보았고 사건 당시의 악몽에 또 한 번 울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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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
어머니와 2년간 동거한 의붓아버지 B(49)씨는 지난해 12월 중순 새벽 자택에서 마수의 손길을 뻗었다.
그는 갑자기 흉기 2개를 꺼내 싱크대 위에 올려두며 "잘해라. 안 그러면 다 죽는다. 옆에 누우라"면서 A양을 방구석으로 내팽개쳤다.
B씨는 무릎을 꿇은 채 빌고 있는 A양에게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성장이 빠르냐. 화장한 후부터 너희 엄마는 눈에도 안 보인다"며 위협한 뒤 성추행했다.
이 와중에 B씨는 잠깐 화장실에 갔고, 이 틈을 타 A양은 하의가 벗겨진 상태에서 달아나 더 큰 봉변을 면했다.
결국 B씨는 재판에 넘겨졌다.
A양은 2차례에 걸쳐 B씨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재판부에 냈다.
1심 재판부는 탄원서에 대해 신중히 판단했다.
A양이 처벌불원 의사를 밝혔지만, 성범죄 사건에서 미성년자인 피해자의 의견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의탁할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어머니밖에 없고 미성년자인 피해자로서는 어머니의 강력한 뜻을 거절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면서 "변호사가 제출한 의견서에 따르면 피해자는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길 원하면서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은 어머니의 뜻에 따라 탄원서를 작성하게 됐을 뿐 용서의 마음으로 이를 작성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지속해서 피고인의 선처만을 탄원하면서 임의로 피해자 명의의 합의서를 작성해 제출까지 했다"며 "이런 어머니의 태도를 볼 때 탄원서는 피해자의 자유롭고 진정한 의사에 기초한 것으로 볼 수 없어 양형 인자 중 감경요소로서 '처벌불원'을 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1심 재판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B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20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당시 재판부는 A양이 어머니를 통한 합의 과정에서 오히려 2차 피해를 봤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광주고법 전주재판부 형사1부는 B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원심을 깨고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20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고 16일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자녀를 양육해야 할 위치에서 나이 어린 피해자를 흉기로 위협했고 추행 정도가 중해 엄벌이 불가피하다"며 "다만, 피고인이 범행을 모두 인정하며 반성하고 항소심에 이르러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은 점을 고려했다"고 판시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