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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합리(合理) 그리고 화리(和理)

좀 지난 얘기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는 좀 아쉬웠다. 미사여구나 감동적인 표현, 기대감 주는 선언이 적어서는 아니다. ‘좋은말 대잔치’로 잔뜩 바람만 채웠다 실망시킨 취임사가 어디 한두 번인가. 차라리 건조한 게 낫다. 오히려 진단과 결론은 명쾌했고 요지는 뚜렷했다. “반지성주의의 만연으로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으며 과학과 진실이 전제된 합리주의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백번 옳은 말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감동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합리주의의 맹점이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오늘날 사회를 양분하다시피한 진영 논리는 합리주의가 기름을 부은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합리는 시시콜콜 옳고 그름을 따진다. 이분법이다. 절충이란 게 없다. 대표적인 게 법조계다. 모든 건 승패로 결론이 난다. 판결이다. 불법의 확인 여부에 따라 옳고 그름이 결정된다. 스펙쌓기와 아빠찬스를 보자. 현시점에서 조국 전 장관은 그르고 정호영 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아직 옳다. 과연 그럴까? 국민이 정말 두 사람을 다르게 볼지 의문이다.

국민이 바라는 건 청렴성이고 도덕성이다. 국민 정서는 부끄러워 스스로 물러나는 쪽이다. 그건 합리의 범주 밖이다. “사퇴는 불법의 간접 인정”이라고 판단한 게 잘못이다. “나만 그랬냐”도 마찬가지다. 굳이 따져봐야 직성이 풀리는 합리의 한계다. 명백한 오류다. 조 전 장관이 합리에서 벗어나 판을 키우지 않고 물러났더라면 결과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세상사 시시비비는 변한다. 어제 옳은 일이 내일은 아닐 수 있다. 정치에선 더욱 그렇다. 합리에 매몰되면 논쟁은 갈라치기가 되고 의견이 다른 상대는 완전한 적군으로 본다. 조정과 통합은 멀어져만 간다.

선거에선 51 대 49라도 분명 승패가 갈린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룰이다. 승자는 권력을 독식한다. 하지만 그게 과연 합리적인 걸까? 절반을 조금 넘는 지지율의 승자가 절반이 조금 안 되는 패자에게 그래도 되는 것일까.

합리는 단면이다. 자꾸 쪼갠다. 근시안이다. ‘작은 앎’이다. 그것을 벗어나야 세상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 높은 곳에서 멀리 봐야 ‘큰 지혜’를 얻는다. 여유도 생긴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며 그악스럽게 몰아붙이지 않게 된다. 자연스럽게 양보와 조정의 물꼬가 터진다. 이른바 노장사상의 화리(和理)다. 화리는 자신의 진영보다 우리 공동체 전체의 이익과 조화를 중시한다. 짧은 오리 다리를 늘리려 하지 않고 긴 학 다리를 자르려 들지 않는다. 노장사상가 김정탁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우리 사회는 이제는 잘잘못을 따지며 적과 동지를 가르는 ‘합리의 공동체’에서 ‘화리의 공동체’로 넘어가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지금 화리의 정신이 가장 필요한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윤석열 대통령이다. 그는 제42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사에서 통합을 얘기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도 제창했다. 취임사 이후 불과 열흘 만에 화리를 깨우쳐서라고 보는 건 억지다. 최근 장·차관 인선과 검찰의 보복성 물갈이 인사를 보면 아쉬움이 넘쳐난다.

그래도 희망을 찾자. 언제나 시작은 미미하기 마련이다. 그게 화리의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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