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페드로 산체스 신임 총리가 내각의 70%를 여성으로 채우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6일(현지시간) 엘파이스 등 스페인 언론들에 따르면, 집권 사회노동당의 산체스 총리는 조각을 완료하고 13명의 장관 지명자 중 10명을 여성으로 채웠다.
경제장관에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차관급 여성 관료인 나디아 칼비노 예산담당 총국장(director general)이 지명됐고, 마찬가지로 여성인 돌로레스 델가도 대테러 담당 검사장이 법무부 장관에 낙점됐다.
내각의 2인자인 부총리 겸 양성평등부 장관에는 여성 헌법학자이자 2004∼2007년 문화부 장관을 지낸 카르멘 칼보(60)가 지명됐다. 칼보 부총리 내정자는 산체스 총리 취임 후 부활한 양성평등부 장관도 겸임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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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새 내각(맨 윗줄 왼쪽이 페드로 산체스 총리) [EPA=연합뉴스] |
스페인 민주화 이후 최대의 정치적 위기라 불린 카탈루냐 분리독립 문제를 담당하는 행정자치부 장관에도 여성인 메리셀 바테트가 지명됐다.
이외에도 교육, 노동, 환경 등의 장관직을 여성이 거머쥐었다.
아직 국방장관 등의 인선이 남아있지만, 총리를 포함해 현재 각료 14명 중 10명이 여성으로 절대다수다. 여성 비율은 70%에 달한다.
스페인 민주화 이후 여성 장관이 남성 장관 수보다 많은 것은 이번 산체스 내각이 처음이다.
내각에는 또한 스페인 최초의 우주인인 페드로 두케(55)가 과학부 장관으로 임명돼 화제가 됐다.
이번 스페인 내각에는 강력한 친(親) 유럽연합(EU) 인사들이 포진한 것도 눈에 띈다.
경제장관 지명자인 나디아 칼비노가 EU의 예산담당 고위 관료이고, 외무장관인 호세프 보렐은 유럽의회 의장을 지낸 정치인이다.
이들은 둘 다 강력한 유럽연합 지지자로, 스페인이 EU 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이들을 내각에 기용한 산체스 총리 역시 석·박사과정에서 EU를 연구한 배경에 더해 의정활동 내내 강력한 유럽연합 건설을 옹호해온 스페인의 대표적인 '유럽주의자'로 꼽힌다.
그는 1일 스페인 하원에서 중도우파 국민당 정부에 대한 내각 불신임안이 통과된 뒤 첫 발언 자리에서도 "스페인은 앞으로 유럽연합의 재정 목표를 준수하고 예산과 거시경제의 안정성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새 정부 출범 후 스페인이 현재 프랑스와 독일이 주도하는 EU의 진로 설정 논의에서 주도적인 역할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특히 스페인 새 정부의 한 유력 소식통은 영국의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스페인이 앞으로 유럽연합의 진로와 관련해 독일보다는 프랑스 편에 설 것 같다고 말해 주목된다.
프랑스는 유럽의 경제통합 심화와 유로존 공동재무장관 창설 등을 주장하고 있으나 EU 내에서 재정적 주도권을 쥐고 있는 독일은 미적지근한 반응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4위의 경제 대국인 스페인이 실제로 프랑스 편을 들 경우, EU 개혁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든든한 '우군'을 얻게 된다.
스페인의 싱크탱크 엘카노 로열 연구소의 찰스 포웰 소장도 "라호이 정부는 유럽개혁 이슈에서 남유럽의 독일이라고 할 만큼 보수적이었지만, 이 정부는 대담하고 적극적으로 정치·경제적 통합 심화에 찬성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고 FT는 전했다.
하지만 이런 전망에도 스페인의 새 정부가 프랑스가 주도하는 유럽연합의 통합 심화 방안 중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을 지지할지 등은 아직 불투명하다.
조각이 완료된 뒤 오는 28∼2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EU 정상회의에 산체스 총리가 참석하면 스페인 새 정부의 EU 청사진이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의 강력한 친(親) EU 색채는 최근 포퓰리즘 연정이 출범한 이탈리아와 극명히 비교된다.
이탈리아 정부는 EU의 엄격한 재정 규칙을 벗어나 경기 부양을 위해 정부지출을 크게 늘릴 것을 공언하는가 하면, EU의 대(對)러시아 제재 재검토 등에 앞장서겠다고 천명하는 등 EU에 공공연하게 '반기'를 들어 유럽 수뇌부가 긴장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