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까맣게 잊고 심지어 괴롭히게 되는 것. 가슴 아픈 치매 증상이다.
영국 북동부 애버딘에 사는 빌 던컨(71)은 9년 전 60대 초반 나이에 노인성 치매 진단을 받았다.
2001년에 만난 앤(69)을 6년 연애 끝에 아내로 맞이한 지 4년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다.
1990년대에 스코틀랜드 지역방송에서 마술 쇼를 진행했던 그의 기억은 하나, 둘 사라져갔다. 앤이 아내라는 사실조차 잘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잔인한 병마도 어쩌지 못한 건 앤을 향한 빌의 사랑이었다.
빌은 최근 친척의 결혼식에 다녀온 뒤부터 한동안 알아보지도 못했던 아내에게 평생의 동반자가 되겠다며 청혼을 했다고 앤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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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V 트위터 계정 동영상-연합뉴스) |
앤은 "친척의 결혼식에 갔었는데, 그때 빌에게 무엇인가 와닿았었던 게 틀림없다. 그로부터 얼마 안 돼 나에게 평생 동반자가 되겠다고 (청혼) 했고, 청혼한 사실을 잊은 뒤에도 끈질기게 언제 결혼하냐며 보챘다"고 말했다.
앤은 친구들이 찾아오기로 한 주말까지 치매에 걸린 빌이 결혼을 하자고 보채면 약소하게나마 결혼식을 치르기로 결심했다.
이후에도 빌은 매일 결혼에 관해 물었고 결국 부부는 다시 하객들 앞에 섰다.
빌과 앤은 지난 17일 자택에서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의 축하를 받으며 12년 만에 '두 번째' 결혼식을 올렸다고 영국 일간 더타임스가 22일(런던 현지시간) 보도했다.
두 사람은 첫 결혼식 때처럼 하객들 앞에서 혼인 서약을 했다. 친구들은 정원을 장식하고 결혼 케이크도 준비했다.
결혼 사진 속 빌은 꽃무늬 셔츠 차림으로 앤은 웨딩드레스에 부케를 든 채 미소를 짓고 있다.
앤은 이날의 느낌을 "마법과도 같은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치매와 싸운 그 오랜 시간 후에도 그가 나를 이렇게나 사랑하니 그저 행복할 뿐이다. 가장 아름다운 날이었다"고 감격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