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서 30년형 선고받고 33개월 복역…무죄로 판결 뒤집혀
엘살바도르 '낙태 전면 금지법' 변화 올까 주목
10대 때 성폭행을 당해 사산한 후 살인 혐의로 징역 30년형을 선고받았던 엘살바도르 여성이 다시 열린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에벨린 에르난데스(21)의 변호인은 19일(현지시간) 열린 선고공판 이후 트위터에 "무죄다. 우리가 해냈다"고 판결 소식을 전했다.
미국의 스페인어 매체 우니비시온에 따르면 엘살바도르 코후테페케 법원의 호세 비르힐리오 후라도 마르티네스 판사는 선고에 앞서 "(에르난데스가 고의로 사산했다는) 확신이 없다. 에벨린에게 유죄를 선고할 수 없다"고 말했다.
판결 후 법정에서 나온 에르난데스는 환호하는 지지자들 앞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정의가 실현됐다"며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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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연합뉴스) |
에르난데스 사건은 보수 가톨릭국가 엘살바도르의 엄격한 낙태 금지법과 관련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가난한 농촌 가정 출신인 에르난데스는 간호대 1학년 재학 중이던 지난 2015년 성폭행을 당한 후 이듬해 4월 배가 아파 화장실에 갔다가 아기를 사산했다. 출산 당시 에르난데스의 나이는 18살이었다.
에르난데스는 곧바로 과다출혈로 의식을 잃었고 그의 어머니가 화장실에서 기절한 딸을 발견해 곧바로 병원 응급실로 데리고 갔다.
에르난데스는 병원 도착 사흘 후 여자교도소로 옮겨졌다. 태아를 고의로 살해했다는 혐의였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에르난데스는 내내 자신이 임신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했다. 성폭행 후유증으로 나타난 간헐적인 출혈을 월경으로 오해했고 심한 복통이 있다고만 생각했다는 것이다.
아기는 태변 흡인에 따른 폐렴으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2017년 법원은 이같은 부검 결과에도 불구하고 에르난데스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해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지난 2월 대법원은 그가 고의로 태아를 해치려 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원심을 파기했고, 에르난데스는 33개월 만에 풀려났다.
대법원의 원심 파기에 따라 다시 열린 재판에서도 검찰은 살인 혐의를 고수하며 1심보다 더 엄한 40년형을 구형했으나 법원은 결국 에르난데스의 손을 들어줬다.
엘살바도르는 성폭행이나 근친상간으로 인한 임신, 산모의 생명이 위험에 처한 경우를 포함해 어떤 경우에도 낙태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집에서 아이를 낳다 사산하거나 임신 중 의료 응급상황으로 유산하는 경우에도 살인이나 과실치사 혐의로 최고 40년형의 처벌을 받기도 한다.
2000∼2014년 동안 사산이나 유산을 경험한 후 처벌받은 여성이 147명에 달한다고 로이터가 시민단체의 통계를 인용해 전했다. 여전히 복역 중인 여성이 20명가량 된다.
최근 들어 엘살바도르에서도 낙태에 대한 여론에 변화가 오면서 성폭행 피해자 등에 대해서 제한적으로 낙태를 허용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에르난데스에 대한 이번 무죄 판결이 엘살바도르에서 낙태 금지법 개정 여론에 좀 더 힘을 실어줄지 주목된다.
지난 6월 취임한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산모의 생명이 위험에 처한 경우엔 낙태가 허용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날 미주지역 인권단체 CEJIL은 판결을 환영하며 "피해 여성들을 범죄자로 만드는 일은 중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