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매치기, 날치기 등 여행객을 겨냥한 각종 범죄로 악명높은 이탈리아 로마에서 한인 어르신들이 '노익장'을 발휘해 현지 절도범을 검거하는 데 힘을 보태 화제가 되고 있다.
주인공은 박상록(71) 민주평화통일위원회 이탈리아 지회장, 최병일(62) 재이탈리아 한인회 회장 등 로마 한인 사회에서 중추 역할을 맡고 있는 인사들.
17일 현지 한인사회에 따르면, 박상록 지회장과 최병일 회장은 최근 늦은 밤, 로마의 중앙역인 테르미니 역 인근에 위치한 한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나오다가 북아프리카계 이민 2세나 난민으로 추정되는 소매치기범들과 맞닥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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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앳된 용모의 이들 3인조 청년들은 말을 거는 척하더니 순식간에 박 지회장의 외투 주머니에 있던 스마트폰을 가져갔다.
박 지회장과 최 회장은 바로 '도둑이야'라고 큰 소리로 외쳤고, 이에 밖으로 나온 한식당 주인과 합세해 이들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박 지회장은 주범으로 보이는 날치기범을, 최 회장은 주범이 던진 휴대폰을 건네받아 다른 방향으로 달아난 공범을 전력을 다해 따라갔다.
때마침 순찰 중인 경찰을 발견한 주범이 주춤하는 틈을 놓치지 않고, 박 지회장은 그의 멱살을 낚아챘고 경찰이 다가올 때까지 한식당 주인과 함께 그를 제압한 뒤 범인의 신병을 경찰에 넘겼다.
주범이 잡힌 것을 알게 된 나머지 공범들은 박 지회장의 스마트폰을 길에다 버린 채 줄행랑을 쳤고, 그들을 쫓던 최 회장은 되찾은 스마트폰을 박 지회장에게 무사히 건넬 수 있었다.
현지 경찰은 "범인들은 테르미니 역 주변에서 상주하면서 여행객들과 현지인들의 휴대전화, 가방 등을 날치기해온 상습범으로 추정된다"며 젊은이들도 아닌 60∼70대 한국인들이 몸을 사리지 않는 투혼으로 소매치기범을 붙잡은 것에 대해 거듭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체포된 범인에게서 장물 휴대폰 여러 대를 압수해 주인도 찾아줬다고 한다.
박상록 지회장은 "경황이 없었지만,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으려면 무조건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추격에 나섰다"며 "젊은 시절 유도를 했던 것이 도움이 된 것 같다"며 껄껄 웃었다.
충남대 성악과 교수를 지내다 퇴임한 그는 젊은 시절 로마에서 유학한 인연으로 은퇴 후 이탈리아에서 노년을 보내고 있다.
현지 경찰이 골머리를 앓던 소매치기 상습범 검거에 힘을 보탠 최병일 한인회장은 "몇 년 전부터 여행객뿐 아니라 우리 교민들도 테르미니 역 근처에서 소매치기와 날치기를 당하는 일이 빈발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당분간은 (범죄가) 잠잠해지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주이탈리아 한국대사관 행정직원으로 30여년 간 영사 업무를 담당한 최 회장은 젊을 때부터 한인 교민들이 맞닥뜨린 각종 사건·사고의 '해결사'로 현지에서 잘 알려져 있다.
한편, 주이탈리아 한국대사관의 김용갑 영사는 "현지 경찰도 오랫동안 잡지 못한 소매치기 주범이 교민 어르신들의 활약으로 붙잡혔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간혹 소매치기범 중에 칼 등의 흉기로 무장한 사람도 있는 만큼 비슷한 상황에서 똑같이 대응하면 위험할 수 있다"며 유의할 것을 당부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