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분기(7~9월) 가계의 소득 증가율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6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벌어들이는 돈이 '찔끔' 늘어나자 가계는 지갑을 더욱 굳게 닫았다.
이에 따라 가계가 소득 대비 지출을 얼마나 하는지를 보여주는 소비성향은 역대 최저치로 떨어졌다.
◇ 물가상승 고려한 실질 가계소득 0% '정체'
통계청이 20일 발표한 '2015년 3분기 가계동향'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41만6천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7%(명목 기준) 늘었다.
가구 소득은 작년 4분기 2.4%, 올해 1분기 2.6%, 2분기 2.9%까지 증가폭이 확대되다가 3분기 0%대로 낮아졌다.
이런 증가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남아있던 2009년 3분기(-0.8%) 이후 가장 낮은 것이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실질소득 증가율은 0.0%로 아예 정체 상태에 빠졌다.
가계소득 가운데 근로소득은 0.1% 증가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3분기 50만 명대이던 취업자 수 증가폭이 올해 3분기엔 30만 명대로 둔화한 데다가 근로자들이 받은 상여금이 줄었기 때문이다.
사업소득은 지난해 4분기(-3.4%)부터 4개 분기 연속으로 감소해 자영업자 등 개인 사업자 사정이 계속해서 나빠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근로·자녀장려금 지급 확대 등으로 이전소득(생산활동을 하지 않아도 정부나 기업이 무상으로 주는 소득)만 11.5%의 큰 폭으로 증가했다.
가계 소득에서 연금, 세금, 건강보험료 등에 들어가는 돈을 뺀 처분가능소득은 지난 3분기 358만2천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0.9% 늘었다.
◇ 7∼9월 평균소비성향 역대 최저치
소득 증가율이 둔화하자 가계는 지출을 줄였다.
올해 3분기 가구당 월평균 지출액은 339만7천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5% 감소했다.
가계지출이 줄어든 것은 2013년 1분기(-0.4%) 이후 2년 6개월 만에 처음이다.
김보경 통계청 복지통계과장은 "3분기에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여파가 일부 남아 있었고, 소비자들이 10월부터 열린 대규모 할인 행사인 '코리아 블랙 프라이데이' 때 물건을 사려고 소비를 유보한 영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
(Yonhap) |
3분기 가계 지출이 감소한 데는 자동차 구입과 관련한 지출이 28.3% 줄어든 점이 크게 작용했다. 자동차를 뺀 가계 소비지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0.7% 증가했다.
경기둔화 영향으로 소비심리가 전반적으로 위축된 상황에서 고령화의 급속한 진행으로 노후를 대비해야 하는 가계 부문에선 소비성향(소득 가운데 소비로 지출한 비용) 하락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가계의 3분기 평균 소비성향은 71.5%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포인트 낮아졌다.
가계가 쓸 수 있는 돈이 100만원이었다면 71만5천원만 쓰고 나머지는 저축했다는 뜻이다.
이는 소비성향 통계가 나오기 시작한 2003년 1분기 이후 최저치이며, 지난해 4분기와 같은 수준이다.
◇ 주거비·식료품비에 짓눌린 소비…지갑 안 열렸다
가계는 주거, 식료품비, 보건 항목 등 필수 지출 항목에서 소비를 늘렸다. 그러나 의류·신발, 교육, 통신 등에서는 지갑을 닫았다.
3분기 가계는 주거·수도·광열에 월 24만1천원을 썼다.
월세 등 주거 비용이 오른 영향으로 전년 동기와 비교한 증가 폭이 7.8%로 큰 편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유가 하락으로 주거용 연료비가 4.6% 감소했지만 월세 가구가 늘어 실제 주거비는 23.5% 뛰었다.
전·월세 거래 중 월세 비중이 작년 3분기 40.3%에서 올해 3분기 45.6%로 커진 영향을 받았다.
육류와 채소 가격 인상으로 식료품·비주류음료 지출도 월 38만원으로 2.7% 늘었다.
식료품·비주류음료 지출은 2012년 3분기 4.2% 증가 이후 최대 증가율을 기록했다.
담뱃값 인상으로 가계의 주류·담배 지출은 전년 동기대비 23.0% 증가했다.
오락·문화 지출은 4.6% 증가하며 3분기 만에 증가세로 전환됐다. 단체 여행과 콘텐츠 구입비가 증가한 결과다.
보건 지출도 5.0% 증가했다.
그러나 의류·신발(-3.5%), 교육(-1.1%) 지출은 감소했다. 보험료, 결혼식·장례비 등이 포함된 기타 상품·서비스 지출도 3.4% 줄었다.
교통 지출(월 30만7천원)은 12.5% 줄어 감소 폭이 가장 컸다.
자동차 구매 지출이 30% 가까이 감소했고 유가가 하락해 연료비도 11.4%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경우 가격이 비싸고 구매 주기가 길어 분기 통계보다는 연간 통계를 봐야 가계가 구매를 줄였는지, 늘렸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고 통계청은 설명했다.
지난달 출시된 아이폰6S 때문에 휴대폰 구매를 미룬 수요가 있어 통신에 대한 지출도 3.9% 감소했다.
◇ 정부 "4분기부터 가계 소득·지출 확대 전망"
지난 3분기에 가구는 연금, 건강보험료, 이자 등으로 월평균 83만4천원을 지출했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0.4% 줄어든 것이다.
이자율 하락으로 이자비용이 6.0% 감소했고 종교기부금 등 비영리단체로의 이전지출도 2.8% 줄었다.
가구 간 소득 불평등은 다소 개선되는 추세다.
5분위(상위 20%)의 평균 소득을 1분위(상위 10%) 소득으로 나눈 '소득 5분위 배율'은 올해 3분기 4.46배였다. 3분기로만 보면 2003년(5.28)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정부는 4분기부터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소비진작 정책 등의 영향으로 내수 회복세가 강해져 가계 소득·지출 증가세가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진명 기재부 정책기획과장은 "전반적으로 고용 증가세가 지속되면 가계소득 증가세가 확대된다"며 "올 4분기에는 소비심리가 지속적으로 개선되는 가운데 정부가 소비촉진 대책을 추진한 영향으로 가계 소비지출도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