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종가' 잉글랜드는 국제 대회 때마다 망신을 당하기 일쑤였다.
세계 최고로 꼽히는 자국 프로축구리그인 프리미어리그를 통해 스타플레이어를 꾸준히 발굴했지만, 이들이 모인 축구대표팀은 조직력 문제를 드러내며 번번이 기대 이하의 성적을 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선 16강 진출에 그쳤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선 조별리그 탈락의 쓴맛을 봤다.
2016 유럽축구선수권대회 16강에선 총 인구 34만 명에 불과한 아이슬란드에 패하며 '이변의 희생양'이 됐다.
잉글랜드 선수들은 대표팀 유니폼만 입으면 몸을 사렸다. 부상을 두려워하고 스타 의식에 찌들었다.
전 세계 축구팬들은 이런 잉글랜드 대표팀을 가리켜 '배부른 돼지들의 축구'라고 비꼬았다.
설상가상으로 잉글랜드는 감독들의 잇따른 낙마로 추락을 거듭했다.
유로 2016 직후 로이 호지슨 감독이 8강 진출 실패 책임을 지고 물러났고 후임인 샘 앨러다이스 감독 역시 부정 스캔들 여파로 2개월 만에 사임해 팀이 뿌리째 흔들렸다.
끝이 아니었다. 주장인 웨인 루니는 A매치 기간 음주논란에 만취 사진이 언론에 공개되기도 했다. 그야말로 '콩가루 집안'이 따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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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
잉글랜드 대표팀을 살린 건 최악의 상황에서 지휘봉을 잡은 개러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이었다.
그는 전에 없던 파격적인 행보를 펼쳤다.
지난해 6월 2018 러시아 월드컵 유럽예선을 앞두고 스코틀랜드 출신 앨런 러셀 코치를 고용해 공격 전담 코치라는 직함을 내줬다.
러셀 코치는 개별 선수에게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잉글랜드 대표팀에 합류해 공격수들과 개별 훈련을 하며 팀 색깔을 조금씩 입혔다.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천문학적인 몸값을 자랑하는 선수들을 군사훈련소에 입소시켜 극기훈련을 받게 하기도 했다.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전혀 예상치 상황에서 대처 능력을 키울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뒷짐을 지고 선수들에게 윽박만 지르지 않았다. 선수들과 함께 흙탕물에 들어가는 등 행동으로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파격적인 행보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미국 NBC에 따르면,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미국 프로풋볼과 미국 프로농구 전술을 연구해 세트피스를 단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해와 올해 NFL 결승전인 슈퍼볼을 직접 참관하기도 했다.
유기적인 움직임과 공간 창출 능력을 집중적으로 연구해 선수들에게 이식했다.
일련의 과정은 '콩가루 팀' 잉글랜드를 조금씩 변화시켰다.
개인기에만 기댔던 잉글랜드는 팀플레이를 중심으로 '승리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잉글랜드는 2018 러시아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을 무패로 통과했고, 네덜란드, 이탈리아, 나이지리아, 코스타리카와 평가전에서 3승 1무를 거두면서 기대감을 높였다.
잉글랜드의 새로운 힘은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더욱 빛났다.
투박한 롱패스 전술 대신 유기적인 빌드업과 빠른 공격 전개로 승승장구했다.
잉글랜드는 조별리그 3경기, 콜롬비아와의 16강전, 스웨덴과의 8강전에서 총 11골을 터뜨렸는데, 이 중 8골을 세트피스 상황(페널티킥 포함)에서 완성했다.
특히 수비 조직력만큼은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스웨덴을 상대로 세트피스 득점을 뽑아내며 2-0으로 완승했고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이후 28년 만에 4강에 진출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