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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에 모셔놓은 에어컨…전기요금 개편 목소리 '봇물'

매년 여름이면 불거지는 '전기요금 폭탄' 논란이 또다시 제기됐다.

지난 5일 서울 낮 최고기온이 36도에 달하면서 여름 무더위가 절정에 이르렀지만, 가정에서 에어컨을 켜려면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야 한다.

만약 평소 전기요금을 4만4천원가량 내는 가정에서 여름철 한 달간 에어컨을 3시간 가동한다면 약 9만8천원, 6시간 튼다면 18만원이 넘는 전기요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기요금이 2배, 4배 이상 불어나는 이유는 우리나라는 가정용 전기요금에 누진제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진제는 전기를 많이 쓸수록 요금 단가가 가파르게 높아지는 구조를 말한다.

현재 가정용 전기요금은 6단계로 나뉘는데, 1단계는 킬로와트시(kWh) 당 전력량 요금이 60.7원이지만, 6단계에 들어서면 709.5원으로 11.7배가 뛴다.

정부는 2007년 전력을 많이 쓰는 가정에 높은 요금을 부과해 전기사용 절약을 유도하고 전력을 적게 쓰는 저소득 가구의 전력 요금은 낮춰 소득 재분배 효과를 내기 위해 누진제를 처음 적용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전력사용 행태가 크게 달라졌는데 소비자들에게만 인내를 요구하는 것은 적합지 않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면서 관련 학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전기 요금제 개편을 위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7일 전력 관련 학계 등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10년째 유지해 온 전기요금 체계를 이제는 바꿀 데가 됐다는 데는 대체로 공감한다.

애초 취지였던 소득 재분배 효과는 점점 떨어지는 반면, 오히려 저소득층에만 절약을 강요하는 상황이 됐다는 이유에서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조성진 연구위원과 박광수 선임 연구위원은 '주택용 전력수요의 계절별 가격탄력성 추정을 통한 누진 요금제 효과 검증 연구' 논문에서 "가구당 전력소비가 증가하면 이런 추세를 반영한 누진구간이나 누진 배율의 조정이 필요함에도 10년간 전혀 변화가 없었다"며 "적정원가를 반영한 요금구조보다 소비절약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가구당 월평균 전력사용량은 1998년 163kWh에서 2006년 220kWh, 2014년 226kWh로 증가했다. 전력 소비량이 300kWh를 초과하는 가구 비중 또한 같은 기간 5.8%에서 22.6%, 28.7%로 늘었다.

현행 제도가 저소득층에게 유리한 제도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저소득층에는 복지할인요금이 적용되긴 하지만, 장애인 가구처럼 전력사용이 많을 수밖에 없는 가구는 결국 누진제로 인해 원가 이상의 요금을 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조성진 연구위원과 같은 연구원 윤태연 부연구위원은 '주택용 전력수요 계절별 패턴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현행 체계에서 가장 많은 혜택을 받는 대상은 고소득 1인 가구"라면서 "구조적으로 전력소비가 많을 수밖에 없는 가구는 저소득층이라고 해도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개편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누진제 개편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미 정치권에서는 전기요금 체계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국민의당은 누진제 구간 6단계에서 4단계로 줄여 가계 부담을 완화하고 대신 전기를 많이 쓰는 기업에 요금을 더 물리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이에 앞서 더불어민주당 변재일 정책위 의장은 "산업용 전기요금은 원가 이하로 제공하고 가정용 전기요금은 선풍기 하나에 의지할 정도로 높은 요금을 적용하는 누진제를 근본부터 다시 검토할 단계가 된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신동현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 선임연구원, 조하현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장민우 연세대 경제학과 박사과정생은 '소득 수준에 따른 한국 도시 가구의 전력소비 행태 이질성과 전기요금 개편 효과 분석' 논문에서 "누진단계 축소는 전력소비의 절약을 유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분석에 따르면 현행 요금제에서 누진단계를 6단계에서 3단계로 줄일 경우 누진구간을 합침에 따라 전력사용량이 100∼250kWh 구간에 속한 소비자는 사용량 요금의 큰 하락을 경험하게 되고, 251kWh 이상 구간에 속한 소비자는 사용량 요금의 큰 상승을 경험하게 된다.

신 선임연구원은 "상대적으로 적은 전력을 소비하는 소득 1분위의 전력사용량은 평균적으로 증가하게 되고 고소득 분위로 갈수록 전력사용량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다만 전력 절약 효과를 고려해 누진율을 현행보다 낮추는 데는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김승래 한림대 경제학과 교수는 임병인 충북대 교수, 김명규 청주대 경제학과 박사과정생과 함께 쓴 '전기요금체계 개편의 소득재분배 효과- 주택용을 중심으로' 논문에서 누진단계는 유지하되 누진율을 3배 축소한 안을 내놓았다.

김 교수는 "누진구간을 6개로 유지하면서 1·3·6단계를 새로운 요금체계의 각 단계로 정할 경우 10개 분위 소득계층의 후생이 증가하고 재분배 효과도 개선되는 것으로 추정됐다"고 설명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누진단계와 누진율 모두 완화할 것을 주장했다.

조성진 연구위원은 "대부분 국가에서는 3단계 이하 누진단계를 채택하고 있으면 누진배율도 2배 이하"라며 "누진단계를 3단계 이하로 축소하고 누진배율도 크게 줄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만 "축소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려면 단계적 조정 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며 누진배율을 축소하는 경우 현재 원가보다 크게 낮은 단계의 요금이 상승이 불가피하고 이는 일부 저소득 가구의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또 "앞으로 기저발전 증가 등으로 전력 도매시장가격이 하락하고 전기 원가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돼 저소득 가구에 대한 비용 지원 효과는 더욱 축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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