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여성이, 복장이 비교적 자유로운 세속주의 이슬람국가를 여행한다고 가정하자. 어깨가 드러나고 배꼽이 보일락말락 하는 '탱크톱'과, 무릎 위 10∼20㎝ 길이 반바지 중 어떤 복장이 더 눈총을 받을까.
한국에서라면 당연히 배꼽티가 더 주목을 받겠지만 무슬림의 시선은 다르다.
터키 사회에서 성인 여성에게 반바지는 '금기'에 가깝다.
여름철 대도시 이스탄불 거리를 걷다 보면 어깨끈이 달린 민소매 상의나 등이 시원하게 드러난 홀터넥을 입은 여성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반바지 - 핫팬츠가 아니다 - 를 입은 여성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마치 타이즈를 신은 것처럼 착 달라붙어 엉덩이와 허벅지의 굴곡이 완전히 드러나는 바지는 흔히 보여도 반바지 차림은 드물다.
터키에서 15년간 거주한 30대 여성 교민 신모씨는 "이스탄불 같은 대도시는 복장이 매우 자유로운 편인데도 여성이 맨다리를 드러내는 옷차림은 기피한다"고 29일 연합뉴스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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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14일 반바지를 입었다는 이유로 여자 버스 승객을 폭행한 터키인 압둘라 차크로을루가 28일 법정으로 호송되고 있다. (사진=아나돌루통신) |
같은 길이의 스커트는 정장차림으로 더러 볼 수 있으나 반바지는 부적절하게 여겨진다.
'야한 옷'이나 '부적절한 복장'의 기준이 한국인의 시각과는 다른 것이다.
세속주의 이슬람 국가에서 어깨와 등이 훤히 드러나는 옷차림이 흔한 것을 보고 아무 생각 없이 반바지를 입었다가는 자칫 폭행을 당할지 모른다.
이달 12일 이스탄불의 마슬락 구역에서 반바지를 입은 23세 여성이 버스에서 남성 승객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해 턱부위 등을 크게 다쳤다.
마슬락은 한국인도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이 남성은 경찰 조사에서 "맞은 편 여자가 반바지를 입고 불손한 자세로 앉아 있어서 얼굴을 걷어찼다"고 진술했다.
이스탄불 아나돌루검찰청은 28일 압둘라 차크로을루(35)라는 이름의 이 남성에게 징역 최단 2년7개월, 최장 9년을 구형했다.
검찰이 이같은 중형을 구형한 것은 이 사건이 터키 사회에 반향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최근 터키에서는 복장이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폭행·폭언을 당하는 사례가 잇달았다.
지난달에는 맨살이 드러나는 옷을 입었다는 등의 이유로 임신부가 이스탄불 거리에서 부르카(눈만 드러내는 이슬람 복장) 차림 여성에게 폭행을 당했다.
일각에서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의개발당(AKP)의 집권 이래 부쩍 보수화된 사회분위기가 표출되는 현상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