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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분명 진실을 말하는데 거짓…'제3의 거짓말 유형'

"분명히 사실 혹은 진실을 말하는데 거짓인 경우가 있다. 진실만을 얘기해 사람을 속이는 일은 가능하며 흔하다. 특히 정치인들이 이 방법을 자주 쓴다."

미국 하버드대 토드 로저스 교수와 펜실베이니아대 와튼경영대학원 모리스 슈와이처 교수 등으로 구성된 연구팀이 이런 속임수를 '거짓말의 제3 유형'으로 확정할 수 있다는 내용의 연구논문을 최근 발표했다고 미국과학진흥협회(AAAS)의 과학뉴스 사이트 '유레크얼러트'가 16일 전했다.

학술적으로 거짓말은 크게 두 유형으로 나뉜다. 적극적으로 허위를 진술하는 '작위에 의한 거짓말'(lies by commission)과 소극적으로 관련 정보나 사실을 빠뜨리는 '부작위에 의한 거짓말'(lies by omission)이다.

연구팀은 그러나 일상에서 '호도성(糊塗性) 거짓말'(lies by paltering)이 매우 폭넓게 사용되고, 그 폐해 등이 크다면서 이를 거짓말의 정식 유형으로 채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폴터링(paltering)의 사전적 뜻은 '말끝을 흐리거나 얼버무리는 일', '불성실하게 발언 또는 행동하는 것', '고의적으로 불분명하게 만드는 거짓말' 등이다. '풀을 칠해 덧씌우는 것처럼, 명확하지 않게 일시적으로 감추거나 흐지부지 덮어 버림'이라고 설명돼 있는 한국어의 '호도'라는 단어와 유사하다.

논점 회피, 불완전한 표현, 선택적이고 편향된 진술, 과장과 왜곡, 미묘한 의미 차이를 무시하는 행위 등이다.

연구팀은 '호도성 거짓'의 대표적 사례로 1998년 1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발언을 들었다. 이때는 전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위스키와의 '성적 (또는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소문과 의혹이 고조됐으나 조사위를 통해 사실로 밝혀지기 전이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전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오른족)과의 `부적절한 관계'로 정치적 몰락과 탄핵 위기에 몰렸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전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오른족)과의 `부적절한 관계'로 정치적 몰락과 탄핵 위기에 몰렸었다.
당시 공영 PBS방송 짐 로저스 앵커는 대담에서 클린턴에게 '성적 (또는 부적절한) 관계가 없었냐'고 묻자 클린턴은 "성적 관계나 부적절한 관계는 없다. 그게 정확한 사실"이라고 답했다.

그 시점까지 성적 관계가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클린턴이 "없다"(there is no ...)라고 현재형으로 답한 건 '기술적으로'는 사실과 부합한다. 하지만, 그 전에 분명히 그런 사실이 '있었다'는 점에선 '본질적으로' 거짓이다.

연구팀에 따르면, 호도성 거짓은 정치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며 기업인이나 정책 담당자 외교관 등의 협상에서도 자주 활용된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학문적 연구도 많지 않고, 거짓말의 공식 유형으로 자리잡지 못했다.

로저스 교수 팀은 이와 관련해 일반인, 학생, 기업 임원 등 총 1천750명을 대상으로 다양한 설문 조사와 실험을 했다.

그 결과 하버드경영대학원 협상술 강좌 상급반에 등록한 기업 경영진 중 50% 이상이 과거 협상 과정에 때로 또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호도성 거짓'을 했다고 답할 정도로 흔하게 이용됐다.

참가자들은 '호도성 거짓말'을 허위진술성 및 누락성 거짓말과는 구분되는 분명한 속임수로 생각했다.

또 본인의 거짓말 방식 중에 '호도성 거짓'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이 '본질적으로 진실'을 말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윤리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거짓말임이 바로 드러나는 것이 쉽지 않고, 사람들에게 '나쁜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것으로 여겨 재시도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연구팀은 그만큼 폐해도 크다면서 이를 '결함 있는 정신적 모델'로 규정했다. 실제 뒤늦게 자신이 호도당했음을 깨닫게 된 사람들은 거짓말을 한 상대편를 가혹하게 평가했으며 협상 상대로 다시는 마주치고 싶어하지 않았다.

'교묘한 호도 : 그 위험성과 보상. 다른 사람을 오도하기 위한 진실 말하기"라는 제목의 이 논문은 미국심리학회(APA) 학술지 '인성과 사회심리학' 온라인판에 12일 실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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