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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회장이 몰카·女비하, ‘남톡방’도 여전…대학 性인식 답보

학교 인근에서 ‘몰카’를 찍다 체포된 고려대 남학생이 지난해 고려대 ‘카톡방 성희롱’ 사건 때 단과대 학생회장 자격으로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등 공동행동에 참여했던 것으로 밝혀져 학내에 충격이 일고 있다.

최근 서울대에서는 총학생회장이 여성 외모 비하 사건으로 결국 사퇴했고, 연세대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남톡방(남자들끼리 있는 카톡방) 성희롱’이 폭로됐다. 국내 최고 명문대학이 모두 성추문에 휩싸인 탓에 대학가 성(性) 인식이 제자리걸음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고려대 대자보 게시판을 보면, 9일 이 학교 남학생 A(22)씨는 자신을 ‘피의자’라고 밝히면서 ‘몰카 사건 가해자 사과문’이라는 대자보를 붙였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달 19일 안암역에서 한 여학생의 ‘몰카’를 찍은 혐의(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로 현행범 체포됐고, 기소 의견으로 송치돼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A씨는 대자보에서 “절대 저질러서는 안 되는 범행으로 피해자에게 성적 수치심을 준 것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면서 “작년 학생회에서 많은 인권침해 사례에 목소리를 냈고, 그런 경험을 통해 해당 범죄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지난해 고려대에서는 남학생들이 카톡방에서 여학우들을 대상으로 삼아 음담패설을 일삼은 사실이 폭로된 바 있다. A씨는 “아는 것과 달리 추악한 범죄를 자행했다. 징계와 형사처벌을 달게 받겠으며 자치 활동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거듭 사죄했다.

고려대 소수자인권위원회(준)는 A씨보다 하루 앞서 대자보를 걸고 “작년 카톡방 사건으로 인권을 억압하는 젠더 차별이 일상에 침투해있음이 확인됐는데, 사건 문제 해결에 개입했던 단과대 학생회장이 거꾸로 성폭력 가해자가 됐다”고 규탄했다.

학생들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대자보를 공유하며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진정성 있는 사과문’이라는 반응도 많았지만, ‘익명으로 사과문을 쓰는 게 말이 되느냐’는 등 부정적인 반응도 상당했다.

SNS 한편에선 이번 사건으로 인한 학내 남녀갈등도 엿보였다.

한 남학생이 ‘이 사건은 개인의 잘못이므로 과대확장시켜 특정 집단을 내리깎지 말아야 한다’고 댓글을 달자, ‘여자끼리 사건이 일어나면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일반화시키면서 남자가 성범죄를 저지르면 과대확장하지 말라고 하느냐’는 여학생의 항의가 잇따랐다.

이처럼 새 학기가 시작한 지 2주도 채 되지 않아 국내 주요대학 곳곳에서 성 관련 사건이 일어나면서 대학생들의 성(性) 인식 전반에 진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서울대에서는 총학생회장 당선자가 2년 전 새내기 새로배움터에서 여학생 외모 비하 발언을 한 사실이 폭로돼, 이달 초 끝내 사퇴하는 일이 일어났다.

연세대에서는 지난주에 “모 학과 특정 학번 ‘남톡방’에서 동기 여학생 실명을 거론한 성희롱이 2년 이상 지속됐다”는 성희롱 폭로가 터져 나왔다. 연세대는 지난해 9월에도 같은 유형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바 있다.

해마다 반복되는 대학가의 성추문을 해결하려면 학생들 스스로 인식 개선도 필요하지만, 학교가 여성학·양성평등 교육 등으로 성 인식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윤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여성 위에 군림하려 하는 규범적인 남성성은 여성비하·여성혐오로 이어져 이제 오히려 부끄러움의 대상이 된다”고 최근의 사건들을 꼬집었다.

윤 교수는 “대학들은 경제 논리에 따라 여성학이나 양성평등 교육 과목을 없애고 있는데, 남성의 소수자성과 약자성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교육을 교양과목으로라도 남겨야 어린 세대의 성 인식이 개선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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