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지난달 5차 핵실험 도발 이후 미국 조야의 대북 강경기류가 심상치 않다.
핵실험에 이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되는 장거리 로켓의 엔진 시험까지 강행하는 등 북한의 연이은 핵과 미사일 도발에 따른 안보 우려가 갈수록 고조되고 있는 탓이다.
미국은 북한의 핵미사일이 미 본토를 향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미 일각에서 최후의 수단이긴 하지만 조건부 선제공격론까지 흘러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지난달 백악관 정례브리핑에서 이례적으로 선제공격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오간 것이나 4일(현지시간) 버지니아 주(州) 팜빌 롱우드대학에서 진행된 미국 부통령후보 TV토론에서 예상치도 못했던 선제공격 질문이 나온 것 모두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해 미국인들이 느끼는 심각성을 그대로 반영해주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TV토론 진행자인 CBS 방송의 여성 앵커 일레인 퀴하노는 민주당 부통령후보 팀 케인에게 만약 정보분석 결과 북한이 미국에 도달할 수 있는 핵미사일을 발사하려 한다는 판단이 서면 '선제 행동'(preemptive action·선제 공격)을 취할 것이냐는 깜짝 질문을 던졌다.
이에 케인은 "미국을 방어하기 위해 임박한 위협에는 대통령이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그는 "그 정보가 어떤 것이고 얼마나 확신할 수 있는지를 결정해야 한다"면서도 "그러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는 '미국을 겨냥한 북한의 핵미사일 발사 임박' 상황을 가정한 답변이긴 하지만 불가피할 경우 선제공격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의 언급으로, 미 일각의 대북 선제공격론과 맞물려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도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핵과 미사일 도발을 일삼는 북한을 먼저 공습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냥 일반적으로, 그리고 북한을 특정하지 않고 말하겠다"면서 "일반론적으로 말해 작전 사안의 하나로 '선제 군사행동'(preemptive military action)은 미리 논의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말 그대로 군사 작전에 관한 일반론을 언급한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백악관이나 국무부 등 미 정부 당국자들이 이런 형태의 민감한 질문에 '정보 사안에 대해서는 말할 위치가 아니다', '군사적 사안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없다'고 답변해 온 점을 감안하면 어니스트 대변인의 발언은 일반론이기는했지만 그 자체로 주목을 끌었다.
공교롭게도 당시는 대만의 중국시보가 20일 외교 소식통과 학자들을 인용해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 시설에 대해 '외과수술식' 정밀 타격과 김정일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제거하는 작전을 감행할 경우 중국 측이 묵인할 수 있다는 취지의 보도를 한 직후라 여러 정치적 해석을 낳았다.
그동안 미국 주요 인사 가운데는 마이크 멀린 전 미 합참의장과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CFR) 회장이 최후의 시나리오이긴 하지만 선제공격론을 공개로 언급했다.
멀린 전 의장은 앞서 지난달 16일 CFR 주최 토론회에서 "만약 북한이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에 아주 근접하고 미국을 위협한다면 자위적 측면에서 북한을 선제공격할 수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하스 회장은 같은 달 20일 기고전문매체 '프로젝트 신디케이트' 기고문에서 "중국과의 외교를 통해 북한 문제를 풀지 못할 때의 다음 대책으로 핵 능력을 갖춘 북한과 계속 살아가거나 재래식 전력으로 북한을 공격하거나, 혹은 북한에서 미사일 발사가 임박했을 때 선제타격하는 방안 등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조건부 선제공격론은 한반도 전쟁으로까지 이어질 위험성이 커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4월 CBS 인터뷰에서 "우리 무기들을 활용해 북한을 분명히 파괴할 수 있다"면서 "(선제공격 시의) 인도주의적 대가를 제외하더라도 북한이 우리의 중요한 우방인 한국 바로 옆에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현재 미국의 전력으로 북한을 충분히 초토화할 수 있지만, 공격 감행 시 우방인 한국이 직접적으로 입을 피해를 고려해 섣불리 행동할 수 없다는 발언인 셈이다.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도 최근 한국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심각하게 평가하면서도 선제타격론에 대해서는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다. 현 상황에서는 실질적 전략이 될 수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비핵화를 위한) 성공가능한 전략이 있는 것 같지 않다"면서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피해를 제한하는 게 전부다"고 주장했다.
또 미 유력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북한의 5차 핵실험 직후인 지난달 10일 사설을 통해 "미국 정부가 추가제재냐, 대화냐라는 '불편한 선택'에 직면하게 됐다"면서 북한의 우방 중국 때문에 추가 대북제재 효과를 낙관하기 어려운 만큼 종국에는 협상으로 북한의 핵 동결을 끌어내는 것을 최종 선택지로 제시했다.
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의 미국측 수석대표였던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 특사도 4일 워싱턴DC에서 한 토론회에서북한의 도발에 대처하기 위해 해상봉쇄를 포함한 강력한 제재와 선제타격론까지 거론되는 데 대해 "더 좋은 결과를 낳을지"고민해봐야 한다고 신중한 자세를 취한 뒤 "나는 당장 그런 것들을 테이블에서 치우고 (북한을) 포용하자는 게 아니라 먼저시도할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대화와 협상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갈루치 전 특사는 이어 "미국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능력을 표적으로 삼고 파괴하는 게 물리적으로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런 방법이 좋은 생각이라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말하겠다"며 "제 기능을 한다면 협상은 전쟁보다 좋다"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강경기류에 맞서 북한 역시 대미 강경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5일자 논평에서 "우리의 핵타격 수단들은 임의의 시각에 미국의 정수리에 무서운 불벼락을 들씌울 만단의 전투동원태세를 갖추고 있다"면서 "미국의 핵위협에 대처하여 우리의 군사적 대응방식은 선제공격 방식으로 전환되였다"고 밝혔다.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도 이날 논평에서 멀린 전 의장의 발언을 언급하며 "(미국이) 우리를 반대하는 침략전쟁 도발이라는 범죄의 길을 선택했다"고 비난하면서 "우리에게 침략자 미제에게 무자비한 보복의 철추를 내릴 강위력한 핵보검이 쥐어져 있고 정정당당한 자위적 권리가 있는 한 우리는 수단과 방법에 구애되지 않고 선제타격을 포함하여 효과적인 군사적 대응조치들을 주저 없이 취해나갈 것"이라고 공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