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속도로 확산하고 있는 H5N6형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좀처럼 잡힐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H5N6형이 과거 국내에서 발생한 그 어떤 AI 유형보다도 확산 속도가 빠르고 전염성이 강한 탓에 가금류 농가의 피해는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20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내에서 처음 발생한 H5N6형은 2014년 4월 이후 최근까지 주로 중국, 베트남, 라오스, 홍콩 등에서 유행한 AI 바이러스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국내 야생조류와 가금에서 분리된 H5N6형 바이러스에 대한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중국 광둥성(廣東省), 홍콩 등에서 유행한 것과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유전자 변이가 일부 발견됐는데, 이는 중국 H5N6형에 감염된 야생조류가 시베리아, 중국 북동부 지역의 번식지로 갔다가 우리나라로 도래하는 과정에서 야생조류에 있던 저병원성 AI 바이러스 유전자와 재조합됐기 때문으로 추정되고 있다.
H5N6형의 인체 감염 사례는 현재까지 중국에서만 있었고, 17명의 감염자 중 10명이 사망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장기간 유행한 H5N1형은 2003년 이후 856명이 감염돼 452명이 사망했고, H7N9은 2013년 이후 795명이 감염돼 319명이 사망한 통계와 비교하면 인체 감염 위험 정도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하지만 가금류 농가의 피해는 그야말로 '재앙' 수준이다.
지난달 16일 전남 해남 농가에서 최초 의심 신고가 접수된 이후 한 달여만인 이달 19일 기준으로 도살 처분된 가금류는 1천911만 마리다.
곧 2천만 마리에 육박할 전망이다. 한 달을 기준으로 매일 평균 60만 마리씩 도살 처분된 셈이다.
2014~2015년 H5N8형 발생으로 669일간 도살 처분된 가금류 마릿수가 1천937만 마리였던 것과 비교하면 역대 최단 기간 내 최악의 피해를 냈다.
현재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의심 신고가 들어오고 있는 데다 야생철새가 계속 국내 철새 도래지로 들어오고 있는 시기여서 피해는 지금보다 눈덩이처럼 불어날 가능성이 크다.
일부 지역에서는 인력 부족으로 대규모 도살 처분에 차질이 빚어질 정도다.
또 H5N6형은 닭보다 오리에 더 치명적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오리보다 닭 사육농가 규모가 훨씬 커 피해도 양계장에 집중되고 있다.
확진 판정을 받은 농가 204곳 가운데 산란계 농가가 79건으로 가장 많고, 육용오리 78건, 토종닭 12건 순이다.
도살 처분 피해 역시 닭 농가의 피해가 압도적으로 크다.
전체 도살처분 가금류 마릿수 중 74%가 산란계·산란종계·육계 농가다.
이 중 도살처분 마릿수가 가장 많은 산란계 농가의 경우 전체 사육대비 17.8%가 도살 처분됐고, 번식용 닭인 산란종계의 38.6%도 도살처분됐다.
육계 농가에서는 AI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예방적 차원에서 도살 처분된 곳이 일부 발생했다.
AI 확산 기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으면서 살처분 보상금 및 생계소득안정 등에 드는 국가 예산도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2014~2015년에는 살처분 보상금 1천392억 원을 포함해 총 2천381억 원이 소요됐다.
이번 AI 사태가 장기화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 계란 수급 차질로 인한 가격 폭등 및 공급 대란이 가시화되자 정부는 사상 처음으로 계란 수입도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잠복기가 없이 거의 즉각적으로 감염 증상이 나타나는 H5N6형의 특성이 즉각 대처하는 데 오히려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보고, 추가 방역대책을 통해 아직 농가 발생 사례가 없는 경남북 지역과 제주도로의 바이러스 유입을 차단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지난 13일 경기도 안성천의 야생조류 분변에서 채취된 AI 바이러스가 고병원성 H5N8형으로 확인되면서 방역은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국내에서 두가지 형태의 AI가 동시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데다, H5N8형이 이전 최악의 피해를 냈던 2014년에 발생한 유형이고 잠복기까지 길기때문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