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창조벤처단지 입주한 벤처 대표 A 씨 인터뷰
“우리가 왜 죄인 취급 당해야 하나요?”
A 대표는 조금 상기된 모습이었다. 잘못한 것은 청와대와 최순실인데 ‘성공’이라는 목표만 보고 달려온 우리 벤처기업이 피해를 봐야 하냐며 억울한 심경을 드러냈다. A 대표는 이어 “오늘이라도 쫓겨날 것 같아 직원들도 매일 눈치를 보는 상황”이라며 혀끝을 차 내렸다.
관련 영어기사 보기 31일 서울 중구 청계천의 문화창조벤처단지(cel벤처단지)에 입주해 있는 미디어 벤처기업의 대표 A 대표를 만났다.
그는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지난해 12월 cel벤처단지 입주기업 93개 중 한 업체로 선정됐다. 박근혜 정부의 역점사업인 문화창조융합벨트의 일환으로 조성된 곳이다. 이곳에서 지금까지 직원 20명과 벤처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인터뷰 도중 걱정이 됐는지 A 대표는 “회사 이름 기사에 절대 밝히시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매일 관련 기사를 찾아보느라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열 받는다. 말도 안 된다. 고향 친구 두 명과 5년 전에 원룸 단칸방에서 창업해서 작지만 튼실한 벤처기업으로 키웠다. 13:1의 경쟁률을 뚫고 정당한 절차로 벤처단지에 입주했는데 지금은 주변 지인들, 언론 눈치 보느라…죄인이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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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조벤처단지 내부 모습. 제작지원시설 및 네트워킹라운지, 휴식공간 등 시설이 구비돼 콘텐츠 창착자들을 지원한다. (사진=한국콘텐츠진흥원) |
Cel벤처단지는 콘텐츠 기획과 제작, 사업화, 투자, 유통을 모두 아우르는 생태계를 구축해 줄 것으로 기대됐다. 입주기업에는 최대 4년간 독립공간이 무료로 제공되고 향후 콘텐츠 기획, 창작, 제작 등에 필요한 시설 제공과 투자유치 세미나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사업을 기획·추진한 이가 최순실 측근으로 알려진 CF 감독 차은택(47) 이라는 의혹이 나오면서 내년부터 관련 예산안 전액이 삭감될 위기에 처했다.
차 씨는 문화창조벤처단지와 문화창조아카데미를 담당하는 기구인 문화창조융합본부에서 2015년 4월부터 약 1년간 본부장을 맡았다. ‘차은택 사단’의 일원으로 알려진 송성각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은 차 씨와 함께 단지 내 입주기업과 문화창조아카데미 등을 관장했다. 지난달 27일 이 건물 17층에 있는 문화창조융합본부 사무실의 검찰 압수수색이 진행됐다. 송 원장은 31일 자진 사퇴했다.
“최근까지 차은택이 누군지도 몰랐다. 나랑 전혀 관계도 없는 그 사람 때문에 주변에서 ‘혹시 차은택 연줄로 벤처단지에 들어온 것 아니냐’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까지 들어봤다. 너무 기도 안차서 인터넷에 알아보니 실제로 연줄을 이용해 온갖 혜택을 받고 입주한 벤처기업들이 같은 건물에 몇 있더라. 숨이 막혔다.”
A 대표는 지금 직원들과 임대 사무실을 알아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작년에만 해도 직원들이 서울에 사무실이 생겼다며 다들 좋아했다. 잘해보자고. 그런데 이제 당장 내일이라도 나가라면 나가야지, 내가 뭘 어떻게 하겠나.” 그는 목이 타는지 인터뷰 내내 연신 물을 마셨다.
실제로 정치권에서는 이른바 ‘최순실 예산’을 전액 삭감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는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철민 의원(안산 상록을)은 지난달 31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2017년도 예산안’에 대한 부별심사 첫날 “최순실 등 비선인사들은 현 정권의 국정핵심과제를 기획한 것은 물론 ‘국가예산안’까지 직접 짜고,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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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서울 청계천로 문화창조벤처단지 마무리 공사 현장을 방문한 김종덕 당시 문체부 장관(오른쪽부터)과 송성각 원장, 차은택 문화창조융합본부 단장. (사진=연합뉴스) |
문화창조융합벨트 구축사업 역시 ‘최순실 예산’으로 지목된 상태. 해당 사업은 올해 903억 6500만 원을 지원받은 이후 내년에도 1278억 2800만 원이 편성돼 있다. 이 중 문화창조벤처단지 운영비 등 300억 원의 지원이 당장 내년부터 중단될 예정이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cel벤처단지 입주사 대표 B 씨는 “당장 해외 투자자들의 발길이 뚝 끊기지나 않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애니메이션 등 융복합 콘텐츠 전문기업으로 올해 안에 해외 투자유치를 기대했던 B 씨는 “이미지 하락”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우리 같은 영세 벤처기업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하던 일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이곳 벤처단지의 신뢰가 완전히 추락한 상황에서 ‘벤처단지 출신’ 기업이라는 꼬리표가 투자자들 사이에서 계속 돌지 않겠나”고 심정을 밝혔다.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문화창조융합벨트는 문화와 기술을 접목해서 스타트업 벤처들이 빨리 성장하도록 생태계를 조성하려는 것이 목적”이라며 “이번에 민감한 정치적 사안 때문에 안 좋게 비춰지고 있는데 입주기업들의 입장을 봐야 한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처럼 우리도 창업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 빨리 파고들어야 하는데 개별기업만으로는 힘들다. 행정적 문제점이 발견된다면 개선하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향후 입주기업 관리에 대한 답변을 듣고자 한국콘텐츠진흥원에 연락을 취했으나 관계자는 관련 답변을 거부했다.
코리아헤럴드=박세환 기자 (
sh@heraldcorp.com)